‘끌어내다’ 그 말을 즐기는 자는… [말글살이]

한겨레 2024. 2. 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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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치면 목발을 짚듯이, 말도 뜻이 불분명하면 필요 없는 말을 덧대어 뜻을 선명하게 만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경계 밖으로 나가는 걸 '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들다'라고 한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두 단어가 붙은 말은 움직임의 방향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머릿속에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제 발로 왔으니 뒷소리하기도 계면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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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지난 1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린 카이스트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번쩍 들려 나가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다리를 다치면 목발을 짚듯이, 말도 뜻이 불분명하면 필요 없는 말을 덧대어 뜻을 선명하게 만든다. 단어 ‘드나들다’를 보면 ‘들다’와 ‘나다’가 합쳐져 ‘드나(들나)’가 만들어졌지만, 뜻이 불분명하여 뒤에 ‘들다’를 한번 더 썼다(‘나들이’는 한번씩만 썼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경계 밖으로 나가는 걸 ‘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들다’라고 한다. 하지만 두 단어는 다른 뜻도 많아서 안이나 밖으로 움직인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려면 ‘나오다, 나가다, 들어오다, 들어가다’처럼 뒤에 ‘오다, 가다’를 붙여줘야 한다(요즘엔 ‘안으로 들라!’보다 ‘들어와!’란 말을 더 흔하게 쓴다).

‘나다, 들다’의 사동형은 ‘내다, 들이다’이다. 마찬가지로 ‘내다’는 뭔가를 밖으로, ‘들이다’는 안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두 단어가 붙은 말은 움직임의 방향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머릿속에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끌어내다’와 ‘끌어들이다’만 봐도 그렇다. ‘끌어내다’는 팔다리를 번쩍 들든 야무지게 멱살을 그러잡든 완력이나 폭력을 행사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힘을 망설이지도 숨기지도 않고 쓸 듯하다. 반면에 ‘끌어들이다’는 설득과 회유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제 발로 왔으니 뒷소리하기도 계면쩍다. ‘끌어올리다’와 ‘끌어내리다’도 비슷하다. 사람은 위로 올라가는 걸 좋아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지 끌어내려질 때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진다.

어설픈 대구법을 쓰자면, ‘끌어들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올려질 것이고, 끌어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내려질 것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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