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다’ 그 말을 즐기는 자는… [말글살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다리를 다치면 목발을 짚듯이, 말도 뜻이 불분명하면 필요 없는 말을 덧대어 뜻을 선명하게 만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경계 밖으로 나가는 걸 '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들다'라고 한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두 단어가 붙은 말은 움직임의 방향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머릿속에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제 발로 왔으니 뒷소리하기도 계면쩍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글살이
다리를 다치면 목발을 짚듯이, 말도 뜻이 불분명하면 필요 없는 말을 덧대어 뜻을 선명하게 만든다. 단어 ‘드나들다’를 보면 ‘들다’와 ‘나다’가 합쳐져 ‘드나(들나)’가 만들어졌지만, 뜻이 불분명하여 뒤에 ‘들다’를 한번 더 썼다(‘나들이’는 한번씩만 썼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경계 밖으로 나가는 걸 ‘나다’, 안으로 들어오는 걸 ‘들다’라고 한다. 하지만 두 단어는 다른 뜻도 많아서 안이나 밖으로 움직인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려면 ‘나오다, 나가다, 들어오다, 들어가다’처럼 뒤에 ‘오다, 가다’를 붙여줘야 한다(요즘엔 ‘안으로 들라!’보다 ‘들어와!’란 말을 더 흔하게 쓴다).
‘나다, 들다’의 사동형은 ‘내다, 들이다’이다. 마찬가지로 ‘내다’는 뭔가를 밖으로, ‘들이다’는 안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두 단어가 붙은 말은 움직임의 방향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머릿속에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끌어내다’와 ‘끌어들이다’만 봐도 그렇다. ‘끌어내다’는 팔다리를 번쩍 들든 야무지게 멱살을 그러잡든 완력이나 폭력을 행사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힘을 망설이지도 숨기지도 않고 쓸 듯하다. 반면에 ‘끌어들이다’는 설득과 회유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넘어갈지언정 제 발로 왔으니 뒷소리하기도 계면쩍다. ‘끌어올리다’와 ‘끌어내리다’도 비슷하다. 사람은 위로 올라가는 걸 좋아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지 끌어내려질 때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진다.
어설픈 대구법을 쓰자면, ‘끌어들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올려질 것이고, 끌어내는 걸 즐기는 자는 끌어내려질 것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수진 탈당, 박용진 ‘재심’ 기각…커지는 민주당 공천 파동
- 전문가 역할 뒷전, 의사 집단 이익 몰두…‘공분’ 중심에 선 의협
- ‘전공의 이탈’ 대형병원 헛걸음 응급환자들, 2차 병원선 “검사만”
- 이재명 “경쟁력 있는 후보 고르는 중”…비명 “피 묻히고 조롱하나”
- “나는 경선, 아무개는 컷오프”…뒤숭숭한 국힘 ‘4권역’ 공천
- 전공의 9275명 사직서 제출…정부, 보건위기 최고 단계 상향
- 190m에 소 2만마리 ‘죽음의 배’…이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 공무원 두번째 육아휴직 쓰면 월 450만원까지 지급
- “반에서 20등 의사, 국민이 원치 않아”…또 말로 민심 잃는 의협
- 65살부터 ‘보증금 200·월세 15’…친구랑 20년 살 수 있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