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패권국 싸움…미국, 중·러 연합에 한방 먹었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에도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서 성공리에 첫 발을 뗀다. 중국이 지원군이 돼 준 덕분이다. LNG는 전 세계 주요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동시에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에너지 믹스'에서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꼽힌다. LNG가 석탄·석유를 잇는 '대세 화석연료' 지위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 'LNG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러시아 SOS에 中맞손…"중국이 서방의 빈자리 채웠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시베리아 연안의 기단반도에 있는 아틱 LNG-2 가스전에서 액화된 첫 천연가스 물량이 조만간 선적될 예정이다. 아틱 LNG-2는 러시아의 2위 가스 사업자 노바텍이 2017년 가동을 시작한 야말반도 가스전에 이어 추진 중인 북극 천연가스 프로젝트다. 노바텍은 이곳의 3개 트레인(천연가스 액화 플랜트)을 통해 연간 1980만t의 LNG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최근 첫 번째 트레인이 LNG 생산에 성공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러시아에 LNG 관련 기술 이전을 금지했다. 이에 아틱 LNG-2에 가스터빈을 공급하기로 했던 미국 제너럴일트릭 계열사는 해당 계약을 철회했다. 작년 11월엔 미국 정부가 아틱 LNG-2 프로젝트를 직접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동맹국들이 아틱 LNG-2에서 생산되는 LNG를 구매할 수 없게끔 사실상 차단한 것이다. 전쟁 이후 삼성중공업이 아틱 LNG-2에 투입키로 계약한 쇄빙 LNG 운반선 15척 중 10척의 건조를 중단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러시아는 중국 하얼빈에 본사를 둔 중국조선중공업 광한가스를 새로운 가스터빈 공급사로 선정했고, 플랜트 가동에 필요한 가스터빈을 무사히 공급받았다. 한 러시아 측 인사는 "중국제 가스터빈은 서방의 기술력보다 열등하긴 하지만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서방 기업들이 잇따라 아틱 LNG-2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뒤 중국 기업 5곳이 빈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바텍은 든든한 수요처도 확보했다. 중국 절강(Zhejiang)에너지가스, 상해에너지 등과 LNG 공급 계약을 맺은 상태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러시아산 LNG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벤 셀리그먼 에너지 전문가는 "아틱 LNG-2 프로젝트는 완공(수출 터미널 건설) 측면에서 서방의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알렉산더 키슬로프 애널리스트는 "러시아 LNG 산업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아틱 LNG-2가 (중국의 지원사격으로) 성공을 거둔 덕분에 앞으로 다른 러시아 LNG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서방의 제재가 프로젝트 개발을 좌초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쇄빙 LNG 운반선 확보 일정이 더뎌짐에 따라 '판로 차단'에선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NG 패권국 다툼…美바이든 不許 승부수에 엇갈린 전망
러시아 정부는 2035년까지 연간 최대 1억4000만t의 LNG를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현재 7개 수출 터미널에서 연간 9000만t 가량의 LNG를 해외로 판매해 호주와 카타르를 제치고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올라선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야심이었다. 미국은 추가로 짓고 있는 5개 터미널이 완공되면 연간 6300만t 수출 물량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원래 주로 가스관을 통해 순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국가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EU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금수 제재안을 발동한 뒤 판로가 막히자 LNG 수출 터미널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인 다니엘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 EU의 단결력이 무너질 것이라고 계산했었다"며 "하지만 그의 의도는 LNG 붐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리스타드 에너지는 2019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2350억달러가 신규 LNG 공급에 투자된 것으로 집계했다. 내년까지 추가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550억달러 투자금을 더하면 핀란드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돈이 LNG 분야에 쓰인 셈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현재 착공된 프로젝트를 집계하면 2030년까지 3억t 이상의 신규 LNG 용량이 가동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보다 70% 늘어나는 규모다. 이에 따라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모건스탠리 등 일각에서는 LNG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유로 신규 LNG 수출 프로젝트 허가를 전면 중단한 뒤로 에너지 업계는 "LNG의 수급 전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구매처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어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하는 LNG 업계 특성상 미국 정부의 '빗장'이 길어질수록 추가 개발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LNG 운반선은 수입 터미널이 있는 전 세계 모든 도시로 운항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서 예상치 못한 중단이나 확장이 발생하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가용성과 가격에 연쇄 파장이 일 수 있다"며 "LNG 물결이 막히면 세계가 석탄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미국 내부에서 비판이 계속되자 이날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수출 터미널 불허가 동맹국들의 LNG 수급에 타격을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거듭 진화에 나섰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직원 절반 연봉이 3억"…'이직률 0%' 요즘 뜨는 '꿈의 직장' [최진석의 실리콘밸리 스토리]
- 연대 휴학하고 사업 도전…'1조 주식부자' 등극한 30대 창업가
- "3040 아빠들 푹 빠졌다"…깐깐한 한국 남성 사로잡은 車
- "제2의 에코프로 나왔다" 315% 폭등…3000억 베팅한 개미들 [최만수의 스톡 네비게이션]
- "평소엔 꺼렸지만"…'최대 80% 할인' 파격 세일에 '불티'
- "유니클로 아니었어?"…최민식 걸친 플리스 가격에 '깜짝'
- 에스파 카리나, 과거 밝힌 이상형 보니…딱 이재욱?
- 나훈아 "박수칠 때 떠난다" 은퇴 선언…올해 마지막 콘서트
- "직접 뽑은 장원영 머리카락" 황당 경매…1900만원 돌파
- "저라고 성공만 하겠어유, 죄송"…사과한 백종원, 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