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좌절, 그리고 재기의 11년…류현진 ML 명장면 10[줌 인 MLB]
많은 야구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렸던 류현진의 최종 선택은 결국 국내 복귀였다. 친정팀 한화 복귀를 눈 앞에 둔 류현진은 이로써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한화에서 보내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킴과 동시에 78승48패 평균자책점 3.27의 기록을 남기고 11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3년 류현진이 LA 다저스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류현진의 일거수 일투족은 늘 팬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류현진은 한국 최고의 투수답게 메이저리그에서도 많은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류현진의 국내 복귀를 기념,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만들어냈던 명장면 10선을 꼽았다.
데뷔전부터 빛난 위기관리 능력(2013년 4월3일) : 2012년 시즌 후 포스팅을 통해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스프링캠프에서의 경쟁을 통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꿰찼고, 다저스의 영원한 숙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홈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상대는 클레이튼 커쇼와 함께 당시 최고 왼손 투수로 꼽힌 매디슨 범가너. 1회초부터 앙헬 파간, 마르코 스쿠타로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에 몰린 류현진은 파블로 산도발을 좌익수 방면 라인드라이브로 처리한 뒤 버스터 포지를 병살타로 잡아내고 실점을 내주지 않았다. 이날 류현진은 6.1이닝을 던지며 안타를 10개나 내줬지만, 병살타 3개를 포함해 득점권에서 7타수1안타라는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3실점(1자책)으로 막아내고 데뷔전부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다만, 상대였던 범가너가 다저스 타선을 8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덕분에 패전을 안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베이브 류스의 탄생(2013년 4월14일) : 당시는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던 때였다. 동산고 시절 에이스 겸 4번타자였던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언제쯤 때려낼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한 두 번째 등판에서 6.1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아 메이저리그 데뷔승을 따낸 류현진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한 3번째 등판에서 애리조나의 에이스 이안 케네디와 맞대결을 펼쳤다. 류현진은 마운드에서 애리조나 강타선을 6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6피안타 3실점으로 막아냈고 타석에서는 첫 타석 2루타, 두 번째 타석 중전안타를 쳤고, 세 번째 타석 우전 안타로 출루한 뒤 후속타자의 적시타에 홈을 밟아 득점까지 올렸다. 류현진에게 3타수3안타를 내준 케네디는 결국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5.2이닝 6실점하며 물러났다. 다저스는 경기 후 구단 공식 트위터를 통해 “류현진이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그를 ‘베이브 류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류현진은 이후에도 제법 안타를 치며 타격실력을 뽐냈지만, 홈런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은 2019년 9월23일에 마침내 나왔다. 상대팀은 콜로라도 로키스, 상대투수는 안토니오 센자텔라였다.
트라웃과의 첫 만남, 그리고 첫 완봉승(2013년 5월29일) : 2013년 5월의 마지막 등판. 류현진은 당대 최고의 타자 마이크 트라웃이 이끄는 LA 에인절스를 상대했다. 트라웃은 바로 전날 경기에서 커쇼와 원투펀치를 이루던 잭 그레인키를 상대로 3루타 1개 포함 멀티히트를 때려내는 등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이날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두며 에인절스와 트라웃을 완벽하게 잠재웠다. 9이닝을 던지며 안타 2개만 내줬고, 삼진 7개를 곁들인 무볼넷 완봉승이었다. 특히 트라웃을 상대로는 우익수 플라이-2루 땅볼-삼진-2루 땅볼로 압승을 거뒀다. 7회초 세 번째 타석에서 바깥쪽 꽉 차는 93마일짜리 패스트볼에 트라웃이 방망이도 휘두르지 못하고 삼진을 당하는 장면은 이날 피칭의 백미였다.
류현진은 이 경기를 시작으로 트라웃과 통산 13번의 맞대결에서 안타는 커녕 볼넷 하나 내주지 않고 완벽히 틀어막으며 트라웃의 대표적인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다. 트라웃은 류현진만 만나면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됐다.
포스트시즌 첫 승을 따내다(2013년 10월15일) : 디비전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3승1패로 일축하고 챔피언십시리즈에 오른 다저스의 상대는 ‘가을 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였다. 다저스는 원정에서 치른 1~2차전에 가장 믿었던 커쇼와 그레인키를 모두 투입했으나 2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렸다. 장소를 바꿔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3차전. 팀의 운명을 양 어깨에 지고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1회 1사 후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이후 11타자 연속 범타 처리하며 쾌조의 피칭을 이어갔다. 잘 나가던 류현진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5회초. 류현진은 첫 두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에 몰렸다. 하지만 다음 타자 존 제이를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했고, 그 과정에서 안타인줄 알고 3루로 뛰던 2루 주자 대니얼 데스칼소가 비명횡사하면서 순식간에 2사 1루가 됐다. 위기를 벗어난 류현진은 후속 타자를 3루 땅볼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무리했고, 결국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의 훌륭한 피칭으로 다저스에 승리를 안겼다.
류현진은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정규리그 통산 6경기(5선발)에 등판해 1승(2패) 밖에 따내지는 못했지만 평균자책점 2.73으로 선방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는 2번의 등판에서 1승을 거두고 평균자책점 0.69로 더 강했다. 이는 가을야구에서 세인트루이스만 만나면 작아졌던 커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5경기 4패 평균자책점 6.14)
손에 땀을 쥐게 했던 퍼펙트게임 도전(2014년 5월27일) : 류현진이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등판한 이날, 한국 야구 팬들은 가슴을 졸여가며 TV 앞을 지켰다. 1회부터 시작된 삼자범퇴 행진이 어느덧 7회까지 이어진 것. 당시 AP통신은 실시간 속보로 “류현진이 퍼펙트게임을 8회로 이어간다”고 전하기도 했다. 모두가 퍼펙트게임이라는 단어를 마음 속에 품고 시작된 8회초. 퍼펙트게임의 꿈은 아쉽게도 첫 타자 토드 프레이저에게 2루타를 허용하는 것으로 산산조각났다. 긴장의 끈이 풀린 탓일까. 류현진은 연속안타로 무사 1·3루에 몰린 뒤 희생플라이로 첫 실점을 내줬고, 이후 안타 하나를 더 내줘 1사 1·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어 올라온 브라이언 윌슨이 류현진이 남긴 주자를 모두 홈으로 들여보내면서 류현진은 퍼펙트게임 대신 7.1이닝 3피안타 3실점 승리를 챙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첫 번째 시련(2015~2017년) : 순항하던 류현진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2015년. 시즌을 앞두고 어깨에 통증을 느껴 부상자명단에 오른 류현진은 등판 일정이 차일피일 연기되더니 결국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류현진의 부상은 어깨 관절와순이 파열된 것으로, 당시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칼럼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관절와순 파열로 수술을 받은 67명의 투수 중 복귀해 4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고작 11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수술 후 긴 재활의 시간을 보냈던 류현진은 2016년 7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약 1년 반 만에 복귀전을 가졌다. 하지만 구속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등 이전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결국 이 등판을 끝으로 다시 시즌 아웃, 재활에 돌입했다.
2017년 류현진은 개막부터 팀과 함께했지만, 첫 2년간의 모습은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더니 결국 5월27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마에다 겐타의 뒤를 이어 6회부터 불펜 등판,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메이저리그 데뷔 첫 세이브를 올렸다. 류현진은 이후 곧바로 선발로 복귀했지만, 정규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화려한 복귀(2018년) : 불투명한 전망 속에 2018년 시즌을 앞두고 각오를 새롭게 다진 류현진은 애리조니를 상대한 첫 등판에서 3.2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 5개씩 내주고 3실점하는 난조 속에 패전을 안았다. 하지만 이후 4번의 등판에서 3승을 따내고 평균자책점 1.46을 기록,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그 기간 24.2이닝을 던지며 삼진을 32개나 잡아냈고, 볼넷은 고작 4개만 내줬다. 이런 쾌조의 행진은 부상으로 다시 한 번 발목을 잡혔다. 5월3일 애리조나전서 2회 투구 도중 사타구니 근육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해 1.1이닝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그대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모두가 부상을 당한 류현진을 의심했지만, 류현진은 꺾이지 않았다. 8월15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복귀,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마지막 11경기에서 4승을 따내고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한 류현진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2개월의 폭주(2019년 4월21일~6월23일) : 메이저리그 데뷔 후 류현진이 가장 화려했던 퍼포먼스를 보인 기간. 시즌 시작 후 3번째 등판이었던 세인트루이스전서 1.2이닝 만에 또 사타구니 부상을 당해 조기강판 당하며 우려를 낳은 류현진은 4월20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 복귀, 패전을 당했지만 5.2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류현진의 폭주가 시작됐다. 류현진은 6월23일 콜로라도 로키스전까지 12경기에서 7승(1패)을 쓸어담고 경기당 평균 7이닝에 달하는 84.1이닝을 소화했다. 삼진 76개를 잡아내는 동안 내준 볼넷은 고작 5개. 0.96의 평균자책점은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특히 5월 한 달간에는 6경기에 등판, 32이닝 연속 무실점과 애틀랜타전 완봉승 등을 포함해 5승을 거두고 평균자책점 0.59를 기록하며 한국 선수로는 1998년 7월 박찬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이달의 투수상을 수상한 한국 선수가 됐다. 류현진의 폭주는 6월29일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필드 원정에서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지며 멈췄지만 이후 6경기에서 다시 평균자책점 0.45를 기록하며 흔들리지 않았고, 이후 2경기 연속 7실점을 하며 흔들리는 와중에도 2.32라는 대단히 좋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치며 아시아 투수 최초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냈다. 그리고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2위를 기록하며 한국 투수 최초로 사이영상 투표 3위 내 이름을 올렸다. 시즌 후 FA가 된 류현진은 4년 8000만 달러를 제시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다.
오타니와의 대결에서 웃다(2022년 5월27일) :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후 류현진과 오타니의 맞대결은 한국 야구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매치업이었다. 그 대결이 마침내 이날 이뤄졌다. 오타니가 선발투수 겸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과 투타 맞대결을 모두 갖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결과는 류현진의 승리. 우선 선발 맞대결에서 류현진이 5이닝을 6피안타 2실점으로 버티며 승리투수가 된 반면, 오타니는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고도 홈런 2방을 맞는 등 5실점하며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다. 그리고 투타 맞대결에서도 류현진이 땅볼로 타점 1개를 내주긴 했지만, 삼진 1개를 곁들여 2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우위를 점했다. 5회말 세 번째 타석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바깥쪽으로 휘며 떨어지는 주무기 체인지업으로 오타니의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이 삼진은 이날 류현진의 유일한 탈삼진이기도 했다.
두 번째 시련, 또 한 번의 성공적 재기(2022년 6월~2023년 10월1일) : 오타니와의 맞대결 바로 다음 등판이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4이닝 3실점으로 물러난 류현진은 이후 팔꿈치에 이상을 느껴 MRI를 찍었고, 그 결과 왼팔 내측측부인대가 손상된 것을 발견해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부분 수술이 아닌 완전 재건 수술로 복귀에만 12개월에서 18개월이 예상됐다. 2023년을 끝으로 토론토와의 4년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류현진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기나긴 재활에 돌입, 성공적인 복귀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수술 후 약 14개월 만인 2023년 8월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복귀전을 가졌고, 9월30일 탬파베이 레이스전(3이닝 7피안타 2실점)까지 11경기에서 3승3패 평균자책점 3.46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후 다시 FA가 된 류현진은 시장에서 준수한 수준의 투수로 평가받으며 메이저리그에서의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예상했던 규모의 계약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많은 나이, 그리고 많은 부상 이력을 가진 류현진에게 큰 돈을 선뜻 투자할 만한 팀이 나타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고 나서도 만족스러운 제안을 받지 못한 류현진은 결국 한화로 돌아오면서 선수 생활의 마무리에 돌입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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