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거친 가지에 성글게 틔운 ‘조선 홍매’… 봄이 벌써 도착했다[박경일기자의 여행]
진도 ‘수진재’
문인화가의 작업실 겸 매화정원
씨 심어 피운 ‘조선 홍매’ 가득
뒤틀린 가지, 꽃도 열매도 작아
진도 ‘운림산방’
초의선사가 선물한 ‘일지매’
볼품없이 말랐지만 꽃눈 탱글
소전 ‘철수생화’에 위로 받아
임자도 매화정원
수진재서 온 445그루 포함해
7000평에 홍·백매 2400그루
압도적 크기 ‘10억짜리’ 매화도
진도·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1. 전남 진도에는 지초 뿌리로 담은 술, 홍주(紅酒)가 있다. 그 홍주를 앞에 두고 고산자 김정호가 글을 남겼다.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의 풍경이로다.” 남녘에 매화 피는, 요즘 같은 이른 봄날이었던 모양이었다. 홍주의 붉은 색을 닮은 홍매화가 진도에 있다. 섬진강 매화처럼 푸근하고 풍성한 매화가 아니라, 진도의 매화는 늙고 마른 가지 끝에 각혈처럼 피어난 조선 홍매화다.
진도 고군면 석현리 남쪽 첨찰산 자락 아래에 ‘수진재(守眞齋)’가 있다. 문인화를 그리는 김주성(69) 전 수원대 미술대학원 교수의 작업실 겸 별장이자 매화정원이다. 수진재 주변에 지금 매화가 한창이다. 석현저수지에서 수진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물론이고 저수지 아래 밭두둑과 수진재 마당까지 매화 꽃으로 그득하다. 매화는 12월부터 피었다고 했다. 개화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꽃등을 켠 듯 가지마다 만개한 매화도 있고, 이제 절반쯤 꽃을 틔운 것도 있고, 아직도 단단한 꽃눈만 달고 있는 것도 있다.
여기 석현리가 고향인 김 전 교수는 어릴 때부터 매화와 가까이 지냈다고 했다. 집 주변에 늙은 매화나무가 많았는데, 별다른 생각 없이 연례행사처럼 매화를 심었단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매화를 심기 시작한 게 나이 서른 무렵부터. 그가 매화를 심은 건 오로지 ‘꽃을 보기 위해서’다. 매실 수확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니, 그가 심은 건 ‘매실나무’가 아니라 ‘매화나무’였던 셈이다. 수진재의 매화가, 섬진강 변 매화농원의 매화와 달라 보이는 건 그래서다.
김 전 교수는 문인화를 그리는 화가의 미감과 안목으로 매화를 길러낸다. 이른 봄, 늙은 매화 등걸에서 성글게 피는 옛 그림 속 매화를 꿈꾼다. 그가 몰두하는 건 홍매화다. 그것도 ‘조선 홍매’다. 중국 매화도, 일본 매화도 아닌 조선 홍매를 심어 기른다.
매화는 접목이나 삽목으로 길러내는 게 보통이다. 당대 우수한 품종의 형질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김 전 교수는 씨를 심어 기른다. 씨를 심어 매화를 기르면 말 그대로 ‘예측 불가’다. 어떤 꽃가루로 수정됐는지에 따라 형질이 바뀐다. 홍매화 나무 씨를 심은 게 백매화를 피우기도 하고, 백매화 나무 씨에서 자란 나무에 홍매화가 피기도 한다.
김 전 교수는 홍매화 씨를 심어 기른 2대(代) 목 중 홍매화를 피우는 나무의 씨만 받아 다시 3대 목을 기르는 방식으로 매화나무를 키우고 있다. 그렇게 붉은 꽃으로 나무의 대를 잇다 보니 조선 홍매화의 특질이 드러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를 이어나가는 동안 열매도 작아지고 꽃도 작아집니다. 가지는 굴절하며 뒤틀리고요, 바로 옛 그림 속에서 봐왔던 ‘조선 홍매’의 특질이지요.”
조선 홍매는 식물학적 분류나 품종이 아니다. 꽃가루로 수정하는 매화에 ‘토종’이 있을 리 없다. 토종매화 형질을 보존한 것도 없으니, 혹여 있다 쳐도 확인할 길 없다. 그래도 ‘조선 홍매’라는 게 영 엉뚱한 얘기는 아닌 것이, 김 전 교수가 심은 매화는 접붙이기나 삽목으로 복제한 게 아니라 ‘우리 땅’에 씨앗을 뿌려 온전히 기른 것이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조선 홍매는 형질이나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대에 걸쳐 우리 땅에 씨앗으로 뿌리내려 자란 홍매를 부르는 이름인 셈이다.
수진재에서는 선홍색, 홍색, 흑홍색의 단엽, 겹엽 등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다. 백매화 중에는 꽃받침이 녹색인 녹악 백매도 있고, 꽃받침이 붉은 홍악 백매도 있다. 가지가 척척 늘어진 능수매화도 있다. 수진재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 지금보다 몇 배나 많았다. 더 크고 더 꽃이 좋은 매화가 가득했다. 수령 100년이 훌쩍 넘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거대한 노거수 매화도 있었다. 수진재의 홍매화는 지난 2022년 가을, 전남 신안의 섬 임자도로 갔다.
수진재 매화가 임자도로 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신안군은 지난 2021년부터 임자도의 관광명소 ‘튤립정원’에다 1만여 평의 매화정원을 조성하겠다며 홍매화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김 전 교수와 연결이 됐다. 김 전 교수를 찾아간 신안군 관계자는 “매화를 기증해주기만 하면 매화정원에다 김 전 교수의 호 ‘서포(西浦)’를 따서 ‘서포조선홍매화정원’을 조성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전 교수는 며칠을 고민하다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수진재의 조선홍매화 나무 445그루가 임자도로 건너갔다. 기증이라고 해도 돈을 아주 안 받는 건 아니었다. 신안군은 김 전 교수에게 기증받은 매화나무를 시가의 10%를 쳐서 보상해줬는데, 그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만한 액수다.
수진재에서 간 홍매화는 잘 있을까. 수진재의 매화는 꽃을 피웠는데 그곳은 꽃소식이 당도했을까. 수진재의 조선홍매 445그루의 안부를 확인하러 진도에서 다시 신안 임자도까지 다녀왔다. 임자도에 다녀온 얘기는 뒤에서 다시. 매화와 노루귀 피어난 봄기운 가득한 진도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2. 전남 진도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이 있다. 소치 허련에서 미산 허형,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남종화 3대의 맥이 여기를 중심으로 흐른다. 남종화란 직업적 화가의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이 아니라, 인격과 학문이 뛰어난 사대부가 수묵과 담채로 그려낸 그림을 뜻한다. 진도에는 또 매화 치는 솜씨가 근사했던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있다. 운림산방과 소전미술관에서 소치, 미산, 남농, 그리고 소전의 매화 그림을 볼 수 있다. 맑은 기운의 그림에서는 종이를 뚫고 나오는 봄의 생동이 느껴진다.
진도를 대표하는 명소는 소치 허련이 말년에 그림을 그리던 화실이었던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에는 유명한 매화나무가 있다. ‘일지매(一枝梅)’라 부르던 매화나무다.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가 선물한 나무라고 알려졌다. 그 나무의 3대가 지금 운림산방 옆의 소치기념관 앞뜰에 있다. 소치 타계 후에도 26년 동안 운림산방을 지켰던 제자 임삼현의 후손이 지켜온 나무다. 일지매 2대 나무는 지난 1995년 수명을 다했는데, 죽기 전에 뿌리 나누기로 기른 나무를 가져다 본래 있던 자리인 여기에 심은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지매는 수세(樹勢)도 약하고 가지도 말라서 볼품이 없었다. 버팀목에 겨우 몸을 의지한 병자의 모습이어서 자칫 고사할까 염려될 정도였다. 봄이면 잊지 않고 꽃을 피우긴 했지만, 꽃에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정성껏 돌봐준 탓일까. 둥치가 굽고 비틀어졌음에도 나무에서는 묵직한 생명력과 기운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가지마다 꽃눈이 탱글탱글하게 맺혔다는 것. 금방이라도 화르륵 꽃을 피울 듯하다.
운림산방 옆에 있는 소치기념관에는 소치가 노년에 힘찬 필치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 ‘매화도’가 여러 점 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거기 붙인 화제(畵題·그림 제목)가 백미다. 소리를 들을 때 넣는 추임새처럼 글은 그림 보는 운치와 맛을 한결 더해준다. 가지를 뒤틀며 피어난 백매를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 매화도에다 소치가 이런 글을 적어뒀다. “담백은 절로 내 마음을 알고(澹泊自能知我意), 그윽함은 본디 남에게 뽐내려 함이 아니다(幽閒元不爲人芳).” 저 스스로 꽃 피어 도달한 담박한 아름다움의 경지가 그림으로도, 또 글로도 진하게 전해진다.
기념관에는 소치의 대작 매화 그림 한 장으로 만든 여섯 폭짜리 ‘묵매도병풍’도 있고, 미산 허형이 그린 여덟 점의 매화 그림으로 만든 병풍 ‘매화팔곡병’이 있다. 두 그림 모두 그 앞에 서면 탄성이 터진다. 그림에서는 묘사나 기교를 넘어선 ‘정신’이 느껴진다. 추운 겨울에 홀로 꽃을 피운 고결함을 풍긴다.
진도군청 옆에는 소전미술관이 있다. 서법이나 서도가 아니라 서예(書藝), 그러니까 글씨를 예술로 완성했다는 소전 손재형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특유의 조형미와 리듬감이 느껴지는 글씨도 좋지만, 글과 그림을 넘나들었던 손재형의 문인화도 훌륭하다.
소전미술관에도 매화 그림이 있다. 1층 전시실에서 대번에 눈을 붙잡는 게 매화 그림이다. 홍매를 그렸는데, 검은 가지 끝에 붉은 매화가 성글게 꽃을 틔웠다. 화제(畵題)가 ‘철수생화(鐵樹生花)’다. 뜻을 새기면 “매화나무 등걸에 꽃이 피었네”다. 늙은 매화나무 등걸을 ‘쇠 같은 나무(철수·鐵樹)’로 쓰고, 거기서 살아있는 꽃(生花)이 피어났다는 뜻이다. 글을 읽고 바라보면 그림 속 홍매화가 드러내는 건 풍류보다는 ‘위로’다. 고고하게 피어난 홍매화 그림이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피는 날은 있다. 누군가 어렵거나 힘들 때 봐달라는 소전의 뜻이었겠다.
소전이 부채에 쓴 글씨도 눈길을 잡는다. ‘천 년 늙은 오동나무는 항상 거문고 곡조를 갖고 있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일생 동안 차가운 곳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매화를 말할 때마다 늘 거론되곤 하는 시(詩)의 한 구절이다.
소전미술관에는 소전 말고 다른 작가의 매화 그림도 있다. 2층 전시실에도 똑같이 ‘철수생화’란 화제를 내건 월전 장우성의 홍매 그림이 있다. 소전의 것보다 붉은 꽃이 한결 크고 소담스럽다. 늙고 거친 둥치에 띄엄띄엄 피어난 홍매를 농염하게 그린 무호 이한복의 ‘매화도’도 있고, 간결한 선으로 날렵하게 그려낸 제당 배렴의 ‘청향(淸香·맑은 향기)’이란 매화 그림도 있다.
3. 전남 신안의 임자도에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유배 온 조희룡이 있었다. 조선 후기 화단의 중심에 있던 그는,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른 이들이 부러진 가지나 늙은 매화의 마른 가지에 듬성듬성 꽃을 그릴 때, 조희룡은 가지 무성한 나무에 탐미적인 붉은 색의 홍매를 대담하게 그렸다. 그가 그린 홍매는 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조희룡이 임자도에 유배돼 머물고 간 지 170여 년이 지나 임자도에 홍매 정원이 만들어졌다. 전적으로 조희룡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진도 수진재에서 실어간 조선홍매는 바로 여기에 심어졌다.
임자도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있다. 세 살 차이였지만 추사 김정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셨던 조희룡은 예송논쟁에 휘말린 김정희의 최측근이란 죄목으로 유배형을 받아 임자도로 내려왔다. 대광해수욕장 옆의 미술관은 신안군이 그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미술관만 지은 건 아니다. 신안군의 전시를 위해 조희룡의 진본 그림 열다섯 점을 사들이기도 했다.
조희룡의 그림 중에는 매화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아 있는 매화 그림만 해도 40여 점이나 된다. 그는 매화에 미쳐 있었다. 매화 병풍을 방안에 둘렀고, 매화를 노래한 시가 새겨진 벼루와 먹을 썼으며, 매화 시를 짓고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 차를 달여 마셨다. 그는 힘찬 필법을 써서 꿈틀거리는 매화 등걸 사이에 붉은 매화꽃이 피어난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 분방해진 붓질의 절정을 보여주는 게 ‘홍백매도’다. 굵고 오래된 줄기와 붉고 흰 매화꽃이 화면을 꽉 채웠다. 그림은 복제품인데도 뿜어내는 힘찬 기운에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다.
미술관에서는 조희룡의 일대기와 함께 폭죽처럼 터진 매화 아래 집 한 채가 그려진 ‘매화서옥도’를 비롯해 붉은 매화가 주렁주렁 달린 ‘홍매도’와 승천하는 용을 연상케 하는 ‘용매도(龍梅圖)’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매화서옥도. 만발한 매화가 함박눈처럼 그려졌는데, 화려한 구성과 필치의 그림이 움직이는 디지털 영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조희룡미술관 가까이에 조선 홍매정원이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가을부터 신안군은 임자도 튤립정원에다 매화를 심었다. 기존의 튤립정원이 5000평 정도인데, 새로 조성한 매화정원은 7000평이 넘는다. 튤립공원 안의 매화정원도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홍매화를 심은 ‘서포조선홍매화정원’이고, 다른 하나는 백매화를 가져다 심은 매화정원인 ‘향설원’이다.
서포조선홍매화정원에는 진도 수진재에서 실어온 조선홍매 노거수 450여 그루가 있다. 전북 남원과 경기 여주 등에서 사들인 일본 매화라 부르는 비매(飛梅)까지 합친다면, 홍매정원의 홍매는 1200여 그루쯤 된다. 향설원에는 해남의 보해농원에 태양광발전을 들이면서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늙은 백매 1200여 그루를 가져다 놓았다.
이런 규모의 매화정원은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다. 섬진강변에 구릉 전체에 매화나무를 심은 매화농원은 많다지만, 임자도의 매화정원은 그곳과 격이 다르다. 섬진강의 매화농원은 매실 수확을 위한 농원이다. 그러니 농원의 나무도 과수원의 나무인 셈이다. 반면 임자도의 매화나무는 오로지 꽃을 보려고 기르는 나무다. 섬진강과 임자도의 매화나무의 차이는 확연하다. 섬진강의 매화나무는, 어린 것들이 많고 매실을 따기 쉽게 하도록 생장점을 잘라 키가 작고 수형이 옆으로 퍼졌다. 꽃도 크고 탐스럽다. 반면 임자도의 매화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가 분방하다. 굽고 뒤틀린 가지들이 많고 꽃의 크기도 작다.
한 그루 한 그루가 귀한 조선홍매화를 한데 모아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럴까. 이렇게 모아놓으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감흥이 덜하다.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자태와 위용은 더할 나위 없는데, 그걸 한데 다 모아놓으니 어쩐지 귀함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임자도의 서포조선홍매화정원은 ‘백억원(百億園)’이란 다른 이름도 있다. 정원에 심은 조선홍매의 가치를 따진다면 ‘적어도 100억 원은 될 거’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란다. 정원에는 조선홍매화의 추정 가치를 적어놓은 팻말이 있다. 팻말에는 10억 원 가치의 나무가 한 그루, 3억 원짜리가 한 그루 있다. 5000만 원짜리는 149그루가 있고, 3000만 원짜리는 93그루가 있다고 적어놓았다. 10억 원에서 500만 원까지 가격을 매긴 조선홍매화의 합산 추정가치는 자그마치 138억 원이다.
과장이 적잖이 섞인 듯하지만 그래도 ‘10억 원짜리’로 지목한 매화는, 한눈에도 그 크기와 위용이 범상찮아 보인다. 이 매화나무는 진도의 수진재에서 가져온 것이다. 김 전 교수의 고향 집에서 누대에 걸쳐 돌봐온 것이란다. 나무는 혹시라도 바닷바람이나 염분에 해를 입을까 싶어 주변에 강관 비계로 만든 임시가설물을 세웠다. 이게 과연 매화나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압도적이다. 이만한 크기의 매화나무가 있다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활개 치듯 펼치고 있는 가지의 수형도 대단하다.
10억 원짜리 매화나무에 피는 꽃은 어떨까. 궁금하지만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아직 수세(樹勢)가 약한 상황이라 꽃을 피우도록 놔뒀다가는 양분을 꽃에 빼앗길 게 걱정돼 최근에 꽃눈을 다 잘라냈기 때문이다. 과연 내년 봄에는 든든하게 뿌리를 내려 가지 가득하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이른 봄날, 홍매화의 향기를 따라 진도로, 임자도로 떠난 여정의 끝은 이렇게 ‘기대’로 끝났다. 사실 새봄은 늘 기대다. 기대가 꽃망울처럼 부푸니 바야흐로 봄이다.
■ 봄꽃이 어디 매화만 있을까
전남 진도와 연도교로 이어진 작은 섬인 접도에는 ‘웰빙등산로’로 이름난 남망산이 있다. 해발 164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남망산에는 총연장 3시간 30분이 넘는 등산코스가 있다. 코스는 다양하다. 바다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능선을 따라가는 구간도 있고, 해안으로 내려서 갯길을 걷는 구간도 있다. 지금 남망산에서는 노루귀며 산자고, 양지꽃 등 무리 지어 피어나는 봄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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