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패배 끝냈다…파리에서 ‘눈물의 발차기’ 나갑니다
태권도 남자 58㎏급 박태준
천신만고 끝에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박태준(20·경희대)은 지금껏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단 두 번 울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딱 한 번 졌다. 2022년 10월8일 울산에서 열린 전국체전 남고부 54㎏급에 출전해 무난히 4강에 올랐지만, 양희찬의 뒤차기에 무릎을 꿇었다. 국가대표급 기량으로 주목받으며 쌓아온 무패 기록도 이때 깨졌다.
압박감 속에서 치른 경기가 패배로 귀결되자, 박태준은 감독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전승으로 고교 생활을 마감해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계속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졌을 때는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서보니 경기 운영이나 정신적으로 배운 게 많은 경기였어요.” 수많은 관중 앞에서 겪은 첫 패배. 그를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속상함에 한없이 울었다.
박태준은 부모의 권유로 취미 삼아 태권도를 시작했다. “집안 자체가 운동과 연관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 태권도부 입단을 권한 이는 초등학교 태권도 코치였다. 태권도장 전지훈련 도중 박태준을 눈여겨 본 코치가 관장을 통해 부모를 설득했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온 그의 부모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끝내 아들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고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세계 무대를 제패하기 전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 남자 58㎏급 동메달리스트 장준(24·한국가스공사)이었다. 그는 장준 앞에 서면 매번 고개를 숙였다.
6번 만나 6번 모두 졌을 때만해도 괜찮았다.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까 채워나가면 된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장준은 한국 태권도 경량급 간판스타였고 경험도, 체격도 그보다 우세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놓고 다투는 7번째 대결에서 박태준은 또 장준 앞에 멈춰 섰다. 장준은 노련한 경기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영리하게 점수를 따냈다. 7전7패. 아시안게임 진출이 좌절되자 “고등학생 때 이후 울지 않게 됐다”던 그의 눈에 분노 서린 눈물이 터져나왔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져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난 정말 안 되나’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슬퍼서 울기보단 화나서 울었어요.” 장준은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월1일.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박태준은 다시 외나무다리에서 장준을 만났다. 모두가 장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승자는 박태준이었다. 7전8기 끝에 이뤄낸 깜짝 승리였다. 관중석에서 아들의 발차기를 지켜본 아버지는 첫판을 이기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승리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태준은 “멘탈적으로 위축돼 있어 경기에 들어가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아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책 2권 정도를 번갈아 읽어가며 잡생각을 떨쳐냈다”고 말했다.
정을진 경희대 태권도 감독은 박태준의 장점으로 “지독한 성실함”을 꼽는다. 키 180㎝인 박태준이 180㎝ 중후반의 장신이 즐비한 경량급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는 체력 훈련으로 체격에서 오는 열세를 극복해야 한다. “제 스타일은 상대를 압박해 체력을 떨어뜨린 다음 기술로 빈 곳을 찾아 점수를 뽑는 방식이에요. 상대보다 몇 배로 더 뛰어야 합니다.”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둔 박태준은 야간 훈련까지 병행하며 하루에 많게는 1000개의 발차기를 소화한다. 또래와 모인 자리에서도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다.
박태준은 롤모델로 이대훈을 꼽는다. 국가대표로 12년간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기량을 유지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대훈은 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을 따냈지만,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다. 정을진 감독은 “전자 호구가 도입된 런던올림픽 이후로 우리는 58㎏급에서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박)태준이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저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차지한 출전권이기에 그의 각오는 남다르다. “올림픽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기회”임을 알기에 박태준은 이번 기회를 살려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다. 미안함과 분노가 뒤섞였던 두 번의 눈물. 세 번째 눈물은 환희일까. “올림픽 때 1등 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지 않을까요?” 거듭된 훈련으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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