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이강인→용서한 손흥민, '하극상' 진상규명은 실종

맹봉주 기자 2024. 2.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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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흥민과 이강인(왼쪽부터) ⓒ 손흥민 SNS
▲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이강인이 직접 영국 런던으로 가 손흥민에게 사과했다. 손흥민은 용서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잘못해 사과했고, 어떤 걸 용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강인은 21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손)흥민이 형을 직접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긴 대화를 통해 주장으로서의 짊어진 무게를 이해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런던으로 찾아간 저를 흔쾌히 반겨주시고 응해주신 흥민이 형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며 "그날 식사자리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팀에 대한 존중과 헌신이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제가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대표팀의 다른 선배님들, 동료들에게도 한 분 한 분 연락을 드려서 사과를 드렸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저의 사과를 받아주시고 포용해주신 선배님들과 동료들에게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의 행동 때문에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된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향한 비판 또한 제가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축구선수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헌신하는 이강인이 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손흥민도 입장문을 게시했다. 손흥민은 자신의 SNS를 통해 ”안녕하세요 손흥민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겁고 어려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강인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비롯한 대표팀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라며 운을 띄웠다.

이어 ”저도 어릴 때 실수도 많이 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좋은 선배님들의 따끔한 조언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손흥민은 ”강인이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저희 모든 선수들이 대표팀 선배로서 또 주장으로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특별히 보살펴 주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저도 제 행동에 대해 잘했다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질타 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팀을 위해서 그런 싫은 행동도 해야 하는 것이 주장의 본분 중 하나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저는 팀을 위해서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팀원들을 통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립니다“라고 이강인을 감쌌다.

현재 이강인은 '하극상'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매체 '더 선'은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하루 전 이강인이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져 손흥민이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고 최초 보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를 인정했다.

▲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이른바 '탁구 게이트'는 한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경질되기 전 아시안컵을 되돌아보는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손흥민과 이강인 때문에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이어 이강인도 SNS를 통해 사과했지만 분노한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매체로부터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이강인측은 "이강인 선수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강인 선수는 자신이 분쟁의 중심에 있었기에 구체적인 경위를 말씀드리기 보다는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며 "이에 부득이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해서는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손흥민 선수가 이강인 선수의 목덜미를 잡았을 때 이강인 선수가 손흥민 선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강인 선수가 탁구를 칠 당시에는 고참급 선수들도 함께 있었고, 탁구는 그날 이전에도 항상 쳐오던 것이었습니다"고 해명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질 전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전력강화위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이 요르단전 패배 원인"이라고 했다.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 역시 "4강을 앞두고 식당에서 벌어진 손흥민과 이강인의 감정적인 다툼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톱스타들이 세대 갈등을 벌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싸움이었다. 나는 식당과 같은 훈련장이 아닌 곳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불과 몇 분 만에 몇 달 동안 쌓은 공든탑이 무너졌다"고 패인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각자 소속팀이 있기에, 두 선수에 대해 축구협회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소집을 안 하는 것 밖에 없다. 추후 대표팀 감독이 선임되면 이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아시안컵 기간 동안)선수들은 오랜 기간 소집돼 정신적, 신체적으로 예민한 상황이었다. (선수가 마찰은)팀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여론이 도와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을 도와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서 “대표팀 내에서 파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룹을 자꾸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대표팀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음 대표팀에서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강인의 사과와 손흥민의 용서가 있었지만 축구 팬들의 분노는 쉽게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일단 대한축구협회의 정확한 사건 규명 의지가 없다.

앞서 사과문에서 이강인이 말한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손흥민이 얘기한 "(이강인의)잘못된 행동"이 정확히 어떤 건지 팬들은 모른다. 진상규명과 대책 없이 사과와 용서만 오간다고 대표팀 내 갈등의 씨앗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러한 '하극상' 사태는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 문제를 외면한 채 오히려 키운 대한축구협회의 소극적인 태도가 계속되는 한 선수단 내부 분열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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