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만 하는 의사들, 환자 걱정한다면 대안 먼저 내놓으라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의사들이 또 파업으로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고 하고 있다. 어제까지 전공의의 3분의 2가량인 8800여명이 사표를 냈고 7800여명이 출근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는 입원과 수술이 연기되고 응급환자 진료마저 지연되고 있다. 앞으로 파업에 참여하는 전공의는 더 늘어날 테고,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 이상 파업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많은 환자가 고통을 받고 피해를 당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려서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내놓았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대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과 함께 향후 5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의사협회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내용이 대부분 반영되었다. 그런데 전공의들은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비판하면서 의대 정원을 늘려도 외과·소아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이미 포함된 정책을 마치 없는 것처럼 다시 요구한다. 의료사고의 법적 부담 완화, 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 구축, 의대 교수 증원,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전공의 교육 개선,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사고로 인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의사 인력에 대한 법적 기준을 개선해 병원들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국립대학병원의 교수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사립대병원은 교수를 더 채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도 했다. 병원에 전문의 수를 충분히 늘리면서 전공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등 수련 환경을 개선하고, 소아청소년과 외에 외과계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소아청소년과 지원금 인상도 약속했다. 응급·중증·분만·소아 환자 진료비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의 진료비(건강보험 수가)를 대폭 인상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둘째, 의사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담당하는 별도 전문기관을 설치하고 ‘의료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를 설치해 증원 규모를 함께 결정하자는 것이다. 노인 인구 증가로 부족해지는 의사 규모는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학교 두 교수의 연구 결과가 비슷하다. 이를 보면 2050년엔 최소 2만2천명, 최대 2만8천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이 결과를 못 믿겠다면,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2025년부터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주기적으로 인력 수급 추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제안했으니, 2~3년 뒤에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것으로 합의할 수도 있다.
셋째,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의사 통제’라며 반대한다. 혼합진료 금지, 진료면허 도입, 미용시장 개방이 이에 해당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일부 남용이 심한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 진료와 함께 섞어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병원·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로 동네 개원의들 수입이 대학병원 교수 월급의 2배 가까이 높아지면 벌어지는 일이다.
진료면허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2년 동안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수련을 받은 이후에야 의사면허와 별도로 독립적 진료가 가능하도록 면허를 주는 제도이다. 의과대학만 졸업해서는 환자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 영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해온 제도다. 진료면허는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려 한다거나 진료면허를 도입하면 인턴 수련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파업에 참여한 인턴 대표는 “우리는 환자와 싸우려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파업에 앞서 의사들이 생각하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대책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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