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주총이냐”… 여전한 소액주주 푸대접 [심층기획-20년 제자리 ‘K디스카운트’]

안승진 입력 2024. 2. 22. 06:04 수정 2024. 2. 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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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주주 배려 및 소통문화가 지름길
기업들 ‘경영권 위협’ 인식… 소통 꺼려
주주들 의결권 등 힘 싣지만 성과 미미
2023년 주주제안 통과 20%… 美 50% 대조
“지분율 낮고 기관투자자 협력 부족 탓”
주주총회 일정·장소 놓고도 불만 커져
美 ‘해서웨이 총회’는 오마하서 축제화
전자주총 활성화 등 소통 확대 목소리
법무부, 완전전자주총 상법 개정 추진

“주주가 직접 참석했으면 납득할 만한 주주총회를 하라!”

지난해 12월 서울 동작구의 한 빌딩에서 열린 코스닥 상장사의 임시 주총장에서는 주주들과 사측 관계자들 간 고성이 오갔다. 소액주주들이 모여 제기한 경영권 안건에 회사가 불통으로 일관한 것이 화근이었다. 영하 3도의 한파에서 주주들은 오전 9시로 예정된 주총 참석을 위해 빌딩 밖에서 기다렸지만, 회사는 입장 번호표를 발급하는 등 시간을 끌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입장을 허용했다. 이내 오후 3시까지 정회를 통보하는 바람에 실제 주총은 오후 4시40분에야 열릴 수 있었다. 주총이 열린 공간은 너무 협소해 주주들이 앉을 공간조차 없어 대부분 서 있어야 했다는 게 당시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안건에 대한 투표 시간은 1분이 주어졌다고 한다. 이에 “라면 끓이는 데도 3분이 걸린다”는 비판이 일자 3분으로 늘어났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에 투표는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했다. 결국 “이게 주총이냐”, “의혹을 설명하라”, “투표 시간 2분 남았습니다” 등 고성으로 현장은 난장판이 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사측이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주총의 중요도는 매우 낮은 게 현실이었다”며 “주주 의견을 수렴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소통의 장은 불통으로 막을 내렸다”고 한탄했다.
◆묵살되는 주주 목소리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과 주주 간 소통의 마당이어야 하는 주총이 이른바 ‘주총꾼’(소액 지분을 가지고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 주주)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적대적인 장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이런저런 사정을 핑계로 주주와의 소통을 기피하는 기업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불통 관행은 주주 환원을 중시하는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를 비롯한 주주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안건은 ‘지배구조 변화’다. 지배구조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메커니즘으로, 대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에 유리한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기업 형태는 가치 저평가를 자초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이 한국ESG기준원의 주주행동주의 데이터를 활용해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05건의 주주 제안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56%(283건)는 임원 선임에 대한 안건이었다. 이어 정관 변경과 배당이 각각 15.4%(78건), 10.7%(54건)를 차지했고, 이사 해임 제안도 8.9%(45건)에 달했다.
경영권 분쟁 관련 주주 제안 건수는 점점 늘고 있다. 아주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4월1일부터 지난 14일까지 경영권 분쟁 소송(소송 등의 제기·신청) 공시는 모두 180건으로 전년 동기(148건) 대비 21.62% 증가했다.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기업에 손해를 발생시킨 임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주주행동주의 투자자에 의한 제안이 정기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20.2%를 기록했다. 2021년, 2022년 국내 주주 제안 통과 비율은 각각 5.5%, 5.6%로 저조했었다. 미국의 경우 주주행동주의 투자자의 주주 제안이 통과되는 비율이 절반 수준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주주 제안 통과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은 주주행동주의 투자자가 확보한 지분율이 낮다는 점과 기관투자자들과의 협력 또는 연대 노력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경영학)는 대안으로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이 주어져 대주주의 독점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이 제도를 도입한 코스피 상장사는 3%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서 교수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대주주가 원하는 이사 선임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며 “주주소통 내역이 많은 기업일수록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도록 적극 반영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 주주총회장 입구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 소통중심 주주총회 바꿔야

주총 자체가 주주보다 회사 편의 위주로 열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카오는 해마다 제주도에서 열어 주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카카오는 본사 또는 인접한 지역에서 총회를 열도록 하는 상법에 따라 본사로 등록된 제주도에서 연다는 입장이지만 카카오 인력 상당수가 경기도 판교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장사들의 주총 일정이 특정 시기에 몰려 주주들의 참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주총 개최 현황에 따르면 12월 결산기업 기준 3월 마지막주 5개 영업일에 개최하고 있는 기업은 2022년 기준 78.65%에 달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국내 IT(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만큼 주주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전자주총이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주주들이 언제든지 IR(기업홍보) 자료를 요청하면 IR팀에서 상시적으로 자료를 공개해주고 홈페이지에도 공개해주는 등 주주와 소통 방식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자 주총은 전자투표를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법무부는 이 같은 전자 주총을 출석, 회의 참석, 의결권 행사까지 모두 가능한 완전 전자 주총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가상공간에서 주총이 열리는 방식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해외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세계 최대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의의 주총은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해마다 5월이면 미국 중서부 오마하에서 떠들썩한 주총을 열어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임원들과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등 주주와의 활발한 소통의 장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록 음악축제 우드스톡을 빗대 ‘자본주의자의 우드스톡’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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