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외계인에게 보냈던 고래의 노래, 발성 비밀 밝혔다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4. 2.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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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후두에서 성대와 비슷한 구조 발견
실험 통해 사람 성대와 다른 방식의 진동 확인
소리 주파수 대역이 선박이 내는 소음과 같아
소음 규제 못 하면 고래 통신망 붕괴할 수도
어린 혹등고래가 태평양 무오레아섬 근처의 보호해역에서 헤엄치는 모습. 자라면 어미와 함께 먹이가 풍부한 남극으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Karim Iliya

미국 록펠러대의 생물학자인 로저 페인(Roger Payne) 교수는 1970년 음반을 발표했다. 작곡자나 가수, 가사도 없는 음반이었지만 10만장 넘게 팔렸고 ‘빌보드 200′ 차트에도 진입했다. 바로 혹등고래가 물속에서 내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었다. 나중에 고래의 노래는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실린 금제(金製) 음반에도 들어갔다. 우주에서 만날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를 알려줄 대표적 소리로 선정된 것이다.

인류가 혹등고래의 노래에 매혹된 지 50년도 넘었지만 고래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내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덴마크 과학자들이 마침내 답을 찾았다. 고래는 후두에 사람의 성대와 비슷한 구조가 있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래 소리는 선박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주파수 대역이 같아 갈수록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간 때문에 고래가 사는 바다가 침묵에 빠질지 모른다는 말이다.

잠수부가 버스 크기의 어린 혹등고래 3마리와 같이 있다./Karim Iliya

◇사람 성대와 비슷하나 발성법은 달라

후두는 바다에 살던 동물이 육지로 나오면서 호흡하는 공기와 섭취하는 먹이를 분리하기 위해 진화한 조직이다. 후두 입구에 있는 후두개가 물이나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다. 포유류는 후두개 밑에 성대라는 주름 조직을 진화시켜 폐에서 내뿜는 공기가 진동을 일으킬 때 소리를 생성한다. 그렇다면 다시 바다로 돌아간 고래의 조상은 물속에서 어떻게 질식되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서던 덴마크대 생물학과의 코엔 엘레먼스(Coen Elemans) 교수와 오스트리아 빈대학 행동인지생물학과의 테쿰세 피치(Tecumseh Fitch) 교수 연구진은 22일 “혹등고래와 같은 대형 수염고래류(baleen whale)는 후두에 저주파 발성이 가능한 독특한 구조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대왕고래나 혹등고래, 북극고래 같은 수염고래류는 입에 있는 빳빳한 수염으로 바닷물을 걸러 크릴 같은 작은 먹이를 먹는다. 이빨로 먹이를 물어뜯는 범고래, 돌고래는 이빨고래류(toothed whale)로 불린다. 소리를 내는 방식도 다르다. 이빨고래류는 후두로 기도를 막고 코에서 소리를 내지만, 수염고래류는 여전히 후두를 성대처럼 쓴다고 추정됐다. 하지만 수염고래가 정확히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수염고래가 숨구멍(콧구멍)으로 공기를 흡입하면 비강 통로를 거쳐 차례대로 후두, 기관, 폐로 이동한다. 소리를 낼 때는 폐에서 후두로 공기를 밀어낸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해변에 쓸려온 수염고래의 사체를 해부해 후두에 있는 U자형 주름이 육상 포유류의 성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육상 포유류와 같다면 공기가 고래의 후두를 지나가면서 U자 주름 끝에 진동을 일으켜 소리가 나야 한다. 하지만 이번 연구진은 수염고래는 육상 포유류의 성대와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과정을 밝혀냈다. 엘레먼스 교수는 “육지에 살던 고래의 조상들이 바다로 돌아왔을 때 기본적으로 후두를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수염고래류인 보리고래와 밍크고래, 혹등고래 사체 3구에서 가져온 후두에 공기를 불어 넣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생각한 것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U자 주름의 돌출부가 진동하지 않고, 후두 상단의 지방 쿠션과 U자 주름의 윗면이 진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엘레먼스 교수는 “U자 주름이 후두 안쪽에 있는 커다란 지방 쿠션에 밀착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고래가 폐의 공기를 밀어내면 지방 쿠션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10㎐(헤르츠)에서 최대 300㎐인 매우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수염고래는 특이한 후두 구조 덕분에 수중 환경에서 물의 흡입을 막으면서도 소리를 내고 공기를 재활용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노래할 때는 공기가 폐에서 후두로 흘러가 지방 쿠션과 U자 주름을 진동시키고, 후두 공기 주머니로 간다. 후두 공기 주머니가 수축하면 다음 발성을 위해 공기가 다시 폐로 가서 재활용된다.

그래픽=손민균

◇고래 주파수가 선박 소음과 같아 문제

대왕고래나 혹등고래 같은 대형 수염고래류는 대양을 이동하면서 저주파 소리를 내 멀리 있는 동료와 의사소통을 한다. 연구진은 후두에서 지방 쿠션과 U자 주름 윗면이 진동해 소리를 내는 방식은 고래가 바다에 살면서 먼저 진화했다고 추정했다. 수염고래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수염고래류 중 혹등고래와 북극고래는 유독 U자 주름이 두꺼워 서로 맞닿을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 덕분에 사람 성대처럼 주름끼리 진동하는 방식으로도 소리를 낼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은 고래가 진화하면서 나중에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U자 주름끼리 진동하면 지방 쿠션 진동 방식보다 고주파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혹등고래는 육상 포유류처럼 40~600㎐ 주파수의 소리를 내지만, 예외적으로 6000㎐(6㎑)까지도 가능하다. 혹등고래가 다양한 레퍼토리로 노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진은 또 컴퓨터에 수염고래 후두의 3D(입체) 모델을 구축했다. 근육 구조를 바꾸면 주파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가상실험)하기 위해 만들었다. 실험 결과 고래가 발성 조직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수염고래류는 후두 구조상 수백㎞ 거리의 장거리 통신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수염고래는 일반적으로 최대 100m 수심에서 300㎐(헤르츠) 주파수의 소리를 낼 수 있다. 더 깊은 바다에서 소리를 낼 수 없어 통신이 가능한 공간에 제한이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인간 때문에 수염고래의 통신망이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염고래가 내는 소리는 주파수 대역이 해수면에서 선박이 내는 소음(30~300㎐)과 겹친다. 소리를 내는 수심도 깊지 않다. 연구진은 대부분 수염고래가 내는 소리는 이미 선박 소음에 심각하게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대의 조이 레이든버그(Joy Reidenberg) 교수는 이날 네이처 논평논문에서 “고래가 소리가 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고래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원리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연구의 한계도 지적했다. 레이든버그 교수는 “육상 포유류의 성대가 진동하면 공기 중에 소리가 발생하는데, 고래가 내는 소리는 어떻게 물에서 전달되는지 밝혀야 한다”며 “후두만 꺼내 실험해 고래의 자연적인 소리 생성 경로를 아직 밝히지 못한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동료를 부르는 소리는 신비롭기 그지없다. 1970년 뉴욕타임스지는 페인 교수의 음반에 실린 혹등고래의 노래에 대해 “동굴 소리 같은 이상한 울림은 저음에서 고음으로 느리게 상승하다가…백파이프의 우울한 음색을 가진 고음에서 으스스하게 출렁이는 흐느낌으로 이어진 뒤 침묵 속으로 스러져간다”고 묘사했다.

페인 교수는 이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Humpback Whales)’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후배 과학자가 네이처 논문으로 화답했다. 엘레먼스 교수는 “1970년대에 비해 지금 바다는 선박이나 시추선이 내는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며 “고래의 의사소통이 소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소음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080-1

Science(1971),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73.3997.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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