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200명, 사슴 1000마리 ‘불편한 동거’···영광 안마도의 내일은[포토 다큐]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초록색 눈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남 영광군 계마항에서 배로 약 2시간 떨어진 안마도(鞍馬島)의 ‘사슴’ 이야기다. 안마도란 이름은 섬의 생김새가 말안장을 닮아서 붙여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이곳에서 말이 사육됐다.
그런 안마도가 현재 사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 200여명이 사는 섬에는 사슴 1000여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슴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산림과 농작물을 훼손하고 있다.
섬에 머무는 나흘 동안 사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슴은 야행성 동문인데, 이곳에서는 낮에도 무리 지어 다니다 사람과 마주치면 빤히 바라보다 피했다. 등산로와 휴교 상태인 마을 내 초등학교 운동장은 사슴의 배설물로 가득하다. 밤이 되자 본격적으로 사슴들의 시간이 시작됐다. 뒷산에서 내려온 사슴들은 들판에서 초록빛 안광을 빛내며 먹이 활동을 했다. 사슴들의 울음소리가 조용한 마을의 정적을 깼다. 수십 마리의 사슴이 있는 들판에 접근하자 일제히 건너편 들 쪽으로 달아났다. 사슴은 마을 길을 따라 이동하며 민가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다. 사슴들은 산과 들을 오가며 아침까지 먹이 활동을 했다.
안마도 주민들은 “사슴 때문에 피해가 너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일 찾은 신기리 마을 주변에는 철조망과 그물이 둘러처져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슴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물에도 사슴들이 오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모내기한 다음 날 가면 모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사슴이 다 뜯어 먹거나, 밟고 가서 벼를 키울 수가 없었어요.” 한 주민이 벼농사를 포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 “사슴을 막기 위해 마을 곳곳에 그물을 설치하다 보니 미관상 좋지 않고 불편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채소를 자급자족하는 섬마을에서 사슴이 농작물에 남기는 피해는 치명적이다. 겨우내 먹기 위해 재배하던 쪽파도 사슴이 뜯어 먹어 성장을 멈춘 채 말라갔다. 사슴들이 껍질을 뜯어 먹어 병충해에 취약해진 나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죽은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개체수를 늘려간 야생 사슴들이 석만도 등 인근의 섬까지 헤엄쳐 이동해 피해는 더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슴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고민해 왔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강용남 신기리 이장은 “사슴을 활용한 관광사업 개발도 생각해봤다”며 “하지만 개체수가 워낙 많고 섬 자체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기상에 따라 배 운항이 결정되므로 관광객이 찾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광군과 주민들은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사슴으로 인한 피해 해소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국민권익위와 농식품부, 환경부는 2차례에 걸쳐 조사에 나섰다. 과거 이 섬에는 사슴이 없었으나, 1980년대 중후반 축산업자가 사슴 10여 마리를 섬에 유기한 것을 시초로 추정했다. 이후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채로 개체수가 불어난 것으로 파악했다.
국민권익위 의결서에 따르면 환경부는 안마도 사슴으로 인한 주민 피해 및 생태계 교란 실태를 조사해 법정관리대상동물 지정 여부를 결정하고 후속 조치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가축사육업 등록취소 또는 폐업 시 가축 처분을 의무화하고 유기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했다. 영광군은 필요시 사슴을 안전하게 섬에서 반출할 수 있도록 가축전염병 검사를 실시하고, 전염병 유무에 따라 조치하도록 했다. 2월부터 생태계 조사를 시작한 권익위는 가을까지 사슴들의 생태를 파악한 후 이르면 10월에 세부 대책을 결정할 계획이다.
권익위가 공개한 국민의견 수렴 결과에 따르면 설문자 중 가축으로 키우다 장기간 방치된 이 사슴들에 대해 ‘야생동물에 해당한다’고 답변한 이들은 전체 응답자 중 70%(3245명)였다. ‘고립된 지역에서 야생화된 가축이 피해를 끼칠 경우 지자체와 협의해 유해야생동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응답자 73%(3383명)가 찬성했다.
안마도 주민과 사슴들은 지난 30여년간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 생명이기에 사슴의 처리를 쉽게 결정할 수도 없다. 정부와 주민이 신중하게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안마도의 사슴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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