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후위기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나요?
유권자 자극하는 기후변화
전세계 76개국 선거 변수로
A. 기후위기가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가 나날이 커지면서, 전 세계 선거에서 결과를 뒤바꿀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유발한 ‘극한 기상현상’은 투표율은 물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는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하죠. 4월10일, 한국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비롯해 전 세계 76개국 42억명 유권자의 표가 움직이는 해입니다. 한국과 미국,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이 선거를 치르는 해인 만큼 기후 이슈가 선거의 주요한 의제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최근 국내외에서 ‘기후 이슈가 선거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유권자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인 33.5%가 기후위기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기후유권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도권 지역 20~30곳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수치라고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대 ‘환경미래센터’ 연구진은 같은 달 발표한 ‘기후변화 여론과 최근 대통령 선거’ 보고서에서 ‘기후 문제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파 유권자 다수가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공화당원 가운데 “기후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이들 중 25%가 조 바이든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밝혔습니다. 매튜 버지스 환경미래센터장은 “유권자들이 경제, 안보, 건강 등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이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증거는 너무 강력해서, 후보자가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면 다른 이슈에서도 유권자가 그 후보자를 덜 신뢰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도 지난해 9월 영국인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수당이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정책을 계속 반대할 경우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유권자들은 환경과 기후변화 이슈를 경제, 건강, 이민 문제에 이어 4번째로 중요한 이슈로 꼽았습니다. 범죄, 주택, 교육, 복지 문제를 앞서는 것입니다. 절반이 훨씬 넘는 64%의 유권자들이 후보자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우선시하길 희망한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87%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을 3배로 늘리기 위해 정부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가 유발한 극한의 날씨가 각종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로이터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서 악천후로 인해 총리를 뽑는 투표가 2주간 지연됐다고 전했습니다. 국회의원 몇 명이 수도 푸나푸티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투발루는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도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강우창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17~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날씨와 정당 득표율을 추적 분석해, 강수량이 10㎜ 증가할 때 보수 정당의 득표율이 0.9% 감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선거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다보니 선거 당일 날씨가 궂을 경우, 야외 활동 등을 계획했던 젊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동 제약이 있는 나이 든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미국 다트머스 대학이 2018년 발표한 연구에선 비가 오는 날 투표할 경우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최소 1%가 공화당으로 마음을 바꿨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날씨가 유권자의 심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 기후위기를 최초로 공개 경고한 제임스 핸슨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해 말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했다”라며 “훗날 돌이켜보면, 2023년과 2024년이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정부의 무능함이 드러나게 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우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올해 선거를 치르는 각국의 정당들이 역사에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라도 분발해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책을 내놓기를 기대해봅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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