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中 신압록강대교 10년만에 뚫리나… “시진핑·김정은 곧 회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2.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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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방의 상징’ 이벌찬 특파원 르포

지난 16일, 6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길이 3030m의 신(新)압록강대교는 새 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2014년 준공 후 10년 동안 개통되지 않은 다리지만, 중국 측 다리 위 도로는 재포장됐고 이가 빠진 것처럼 창문이 깨져 있던 단둥 측 세관 시설은 보수를 마치고 건물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날 다리 아래서 만난 커피차(車) 주인은 “2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요즘 들어 교량 보수 차량이나 화물차가 오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고 했다.

지난 16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위치한 신압록강대교의 전경. 이 대교는 2014년 10월 완공됐지만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 등을 꺼리는 북한 측의 미온적 태도로 개통이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 올해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양국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벌찬 특파원

지난해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며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가운데 양측 미래 경제 협력의 상징인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중국 단둥과 북한 4대 도시인 신의주가 새로 만든 다리를 가동해 경제 협력을 활성화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지금껏 북한은 중국 과잉 의존을 경계해 다리 개통을 미뤄왔다. 본지가 취재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과 대북 무역상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압록강대교에 자재를 실은 화물차들이 오가고, 다리의 북·중 통상구(국경 통로 구역) 공사가 진척되며 개통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단둥의 한족(漢族) 사업가는 “올해 3월 이후 북·중 정상이 만나면 곧바로 다리 개통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픽=백형선

신압록강대교 앞에 있는 중국 측 고층 건물 저상(浙商)빌딩은 4월 완공을 앞두고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건물은 다리 개통 이후 인근 지역이 핵심 상업 지구가 될 것을 예상해 2019년부터 5억5000만위안(약 1020억원)을 들여 지은 높이 130m, 24층 오피스 건물이다. 다리 개통이 미뤄지며 2022년 건설 중단 소문이 돌고 ‘동북 지역 최대 란웨이러우(짓다 만 건물)’란 별명이 붙었지만, 작년에 공사가 재개됐다. 건물의 공식 더우인(중국 소셜미디어) 계정은 최근 “신압록강대교 개통에 유리한 정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좋은 소식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단둥시 산하 회사인 단둥한커우커우안물류는 작년에 본격적으로 신압록강대교의 중국 측 통상구 보수·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작년 6월, 신압록강대교의 여행객 세관 심사 건물의 에어컨 시스템과 통풍구 수리를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랴오닝성발전개혁위원회가 운영하는 지방정부 사이트에 이 회사가 ‘신압록강대교 단둥 통상구 검사 시설 확장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는 공시가 떴다. 2658만위안(약 50억원)을 들여 통관 시설을 추가로 짓는 사업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12월에는 신압록강대교의 단둥 통상구 소방 검사를 의뢰했다. 단둥한커우커우안물류는 2021년 9월 단둥시교통자산관리회사가 단둥수광자동차회사에서 인수했다.

지난해 8월 신압록강대교 중국 측 통상구(국경 통로 구역) 건물에서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 /더우인
올해 4월 완공 예정인 신압록강대교 앞의 저상빌딩의 최근 모습. 높이 130m로 향후 단둥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다리 개통이 미뤄지며 이 건물의 건축 중단 소식이 돌았지만, 작년부터 공사가 빠르게 진척됐다./단둥=이벌찬 특파원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신압록강대교의 중국 측 공사 사진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정보들을 종합하면 지난해 5월부터 다리의 중국 측 통상구 시설 공사가 진행됐고, 8~10월부터 다리 재포장 공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관 건물 확장 공사가 확인됐다. 북한 측의 신압록강대교 시설 건설 움직임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가 입수한 상업 위성 사진에는 다리 북한 쪽에 기중기와 화물 트럭이 들어오고, 건축 자재가 쌓인 모습이 담겼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지난 1월 11일 왕야쥔 주(駐)북한 중국 대사의 이례적인 단둥 방문이다. 그는 단둥시 시장에 해당하는 페이웨이둥 공산당 당서기를 만나고 신압록강대교를 찾았다. 왕야쥔은 이번 방문에서 “우리 대사관은 단둥시와 함께 ‘중조(中朝) 우호년(수교 75주년 맞아 지정)’을 맞아 시대에 맞춰 양국 관계가 더 큰 발전을 이루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둥시 정부 대표단도 지난 5일 북한 신의주를 방문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문건에는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운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문장이 포함됐다.

신압록강대교의 개통 시기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 직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올해가 ‘수교 75주년’이란 명분이 있고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견제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다음 달 초 열리는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마무리한 후 구체적 일정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북·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2019년 6월 이후 5년 만이다.

새 다리 개통이 중국이 북한을 길들이려 경제 교류를 제한하는 가운데 추진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은 김정은이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대러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자국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자 고삐를 바짝 당긴 모양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4~5개월 유엔 제재 품목인 북한 수산물의 수입을 줄였고, 지난해 말부터 중국 내 10만명에 달하는 북한 인력을 감축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베트남 인력 사업을 하는 중국 사업가는 “지난해 12월부터 북한은 새 인력을 중국에 보내려 하고 있지만, 중국 측이 받지 않아 골치”라고 했다. 북한의 대중국 수출 또한 정체되면서 무역 적자 규모는 2022년 7억6000만달러(약 1조142억원)에서 지난해 17억4000만달러(약 2조3220억원)로 급증했다. 북한은 대중국 무역에서 대부분 가발·인조 속눈썹 수출(전체 수출액의 57.5%) 한 종목으로 버티는 중인데, 2019년 북한 최대 수출품이었던 시계 부품조차 이제는 거의 중국에 팔리지 않고 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중국은 다리를 개통하기 전까지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늘리지 않고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압록강대교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하구의 다리. 4차로에 길이는 3030m, 2개의 주탑 높이는 140m에 이른다. 2010년 12월 착공해 2014년 10월 완공됐지만 개통이 미뤄져 왔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 북·중 간 교역이 급증하고 신의주·단둥 일대의 산업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현재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유일한 통상 도로인 북중우의교는 1차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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