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6] 일확천금의 꿈을 노래하다
실현 가능성이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을 비꼬아 ‘꿈도 야무지다’라고 한다. 이 야무진 꿈을 재밌게 풀어낸 작품이 1937년에 오케 음반회사에서 발매한 ‘백만 원이 생긴다면’이다. 노랫말이 웃음을 자아내는 ‘만요(漫謠)’에 해당하는 이 노래는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김정구와 ‘연락선은 떠난다’로 이름을 알린 장세정이 함께 부른 것이다.
남편 역의 김정구와 아내 역의 장세정은 밥상 앞에서 백만 원이 생기면 뭘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내가 금비녀와 보석 반지를 입에 올리자 남편은 비행기도 사자며 맞장구를 친다. 곧이어 그랜드 피아노까지 들먹이는 아내를 향해 남편은 돌연 태도를 바꿔 욕심이 많다며 핀잔을 주기에 이른다. 있지도 않은 돈을 두고 부부가 공상에 심하게 잠긴 것인데, 남편의 말에 서운해진 아내는 마침내 울면서 사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옥신각신하느라 “가정 대전(大戰) 폭발” 직전에 이른 부부는 “아서라 헛소리에 헛꿈 꾸다가 보리밥 비지찌개 다 식어 버렸네”라는 조롱에 이내 현실로 돌아오며 노래를 마친다.
그 당시 쌀 한 가마가 13원 정도였으니 백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백만 원으로 만족이 안 되었나 보다. 1940년에 김정구와 장세정은 ‘명랑한 부부’에서 노다지를 캐어 천만 원이 생기면 뭘 할지 다시 공상에 빠진다. 두 노래 모두 손목인이 작곡했는데,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로 시작하는 ‘학도가’의 익숙한 선율이 ‘명랑한 부부’ 간주에 삽입되어 있어 특이하다. ‘명랑한 부부’에서 아내가 멋쟁이 양장과 구두를 사달라고 하자, 남편은 한술 더 떠 세계 일주를 하자고 응수한다. 급기야 돈 생기면 버림받을까 염려하는 데까지 이른 아내를 어여쁜 당신이라며 남편이 안심시킨다.
일확천금의 꿈은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나 그것을 상상하는 동안만큼은 미소 지으며 행복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공상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잠시 환상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현실을 견딜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노래들은 암울한 식민지 시기에도 일상을 살아야 했던 소시민의 꿈을 보여준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찾아가지 않은 로또 당첨금이 52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헛된 꿈이 누군가에게는 찾아가지 않은 꿈이라 할 수 있다. 곧 정월대보름이다. 둥근 달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우리가 빌어야 할 것은 일확천금의 꿈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그 행복들이 모이고 쌓여 우리를 넉넉한 마음의 부자로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정월대보름에 소원을 비노니, “여러분, 마음 부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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