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버핏이 일본에 간 까닭
지정학 이점·장기 개혁 조치 덕분
한국도 ‘밸류업’ 등 부양책 쏟아내
주주 환원·경영 혁신 더 속도 내야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작년 4월 일본 미쓰비시 등 5대 종합상사 투자를 깜짝 발표했다. 두 달간 사들인 주식 규모가 7조9000억엔(약 70조원)에 달한다. 대신 41억달러어치나 매입했던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 비슷한 시기 세계 전기차 1위인 중국 비야디(BYD) 주식도 팔았다. 시장지배력과 수익창출력만 따지면 일본 상사는 TSMC나 비야디에 비할 바 못 된다. 버핏은 “비야디는 특별하고 TSMC는 멋진 기업이지만 이 두 회사의 지정학적 위험이 너무 커졌다”고 했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일본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변한다. 과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일본은 병참기지 역할을 하며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 상사는 생필품이나 에너지, 식품과 섬유, 무기 거래로 특수를 누릴 게 틀림없다.
우리도 일본의 자극을 받아 주가 띄우기가 한창이다.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공매도 금지와 대주주 양도소득세 완화, 금융투자 과세 폐지, 상속세 완화 등 부양책을 쏟아낸다. 26일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다. 이 프로그램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주주 환원을 늘리고 기업 가치도 높이자는 게 핵심이다. 뒤늦었지만 홀대받던 주주를 제대로 대접하겠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4·10 총선을 앞둔 ‘아니면 말고 식’ 공약 성격이 짙어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상당수 대책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하는데 외려 정책 혼선을 가중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시장에서는 밸류업 바람에 편승해 저PBR 주가 테마를 형성하며 과열 조짐이 나타난다. 단기 차익을 노린 행동주의 펀드도 기승을 부리며 기업의 경영권과 성장 동력을 위협한다. 어설픈 일본 베끼기가 몰고 올 재앙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이다.
한국 증시 저평가는 만성적인 난치병에 가깝다. 최근 10년간 기업이 순이익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쓴 주주 환원율은 29%다. 미국(92%)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37%), 중국(32%)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쪼개기·중복 상장과 재벌 총수의 황제 경영,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 회계 조작 등이 끊이지 않았다.
버핏의 일본 투자를 곱씹어 봐야 할 때다.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는 지정학적 위험이 일본보다 더 크다. 더 강도 높은 경영 혁신과 자본시장 정비에 배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주주 환원도 기업의 성장과 수익이 좋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도 중요하지만 대주주에게는 싼값에 신주를 발행하는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긴 호흡으로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으로 경제 체력과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기 바란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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