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국민 건강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의협은 '정부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 버려야
정부·의료계 간의 대화 중재에 정치권 초당적 대응 필요
[더팩트ㅣ김병헌 기자]우려했던 ‘의료대란’이 현실이 됐다. 오늘(22일)로 벌써 3일째 접어들었으나 해결방안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극한대치 양상이다.지난 20일 오전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인 ‘빅5’ 전공의들은 집단으로 사직서를 낸데 이어 지방 주요 병원들도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이어지면서 전국의 심각한 진료 차질은 커지고 있다. 병원에서 수술이 연기하거나 취소가 속출하고 응급실 기능 위축도 심해지면서 1분 1초가 급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린다고 의사가 집단행동을 벌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더구나 응급실을 비우는 행위는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의사단체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정부 정책에 반대할 때마다 전공의를 앞세워 실력행사를 벌여왔다. 대형 병원들을 줌심으로 저임금에 장시간 근무를 시킬 수 있는 전공의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여와 단체행동에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5대 대형병원 의사의 30~40%가 전공의이다. 특히 업무량으로만 따지면 70%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의협의 반대 명분은 늘 뻔하다. 정부가 칼을 빼들고 나서면 정부가 의사를 범인으로 내몬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정작 대화를 해도 실질적 성과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 정부와 의협이 법에도 없는 협의체까지 만들어 장기간 논의했지만 결과는 항상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의협의 성명도 늘 똑같았다. 논의하자고 해서 들어줄 것은 들어줬는데 이제 와서 증원이 결정되니 뒤통수를 맞았다는 논리다. 증원문제는 큰틀에서 보면 의사들의 이익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문제로 일도양단하기 어렵다. 의사들이 분명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강조할 대목은 아니다. 대학 입시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저출생, 지방과 수도권 불균형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정부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공공병원과 군병원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전체의 10%에 그친다.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받아야 할 대형병원이 돈벌이를 하느라 경증 환자까지 받아온 관행을 그동안 방치한 것도 의사들의 무소불위 행위을 조장해준 측면이 많다. 이번에는 예전과는 달리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깅력 대응한다는 초강경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에 의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잡는 의사 파업 등 극단적 행동에 더 이상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각오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동안 파업 등으로 실력행사를 하면 국민 불안이 커지고 결국 정부가 물러났던 행태에 익숙한 의사들이 '오판'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21일에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이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하는 등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대검찰청, 경찰청까지 나선 이날 브리핑에서는 업무개시명령에도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 및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정상 진료나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도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다수는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국민들의 불안감에 초조해한다. 증원 반대의 중심세력인 전공의 개개인을 보면 기득권만 주장한다기엔 지나친 감은 존재한다. 의사들도 불만은 분명히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들 대표 집단인 의협과 대화를 하면 그냥 기득권을 지키고 가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않는다. 여기에 집단 행동에서는 의협은 한가해보인다. 전공의가 늘 앞선다. 이어지는 의대생들의 동맹파업은 그들을 지도하는 의과대학 교수들도 뒷짐지고 바라보는 모양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상당부분 깔려있는듯 하다.
의협과 의사들은 이제라도 의대 증원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의 의대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의과대학 학장협의회에선 350명을 제시했었다. 의료계 전체가 의대 정원 확대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란 뜻이다. 다만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 없이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 압박하고 나선 것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고 볼수있는 여지는 있다. 그래도 그들이 주장하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절대로 증원을 봉쇄시키겠다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며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물론 상황에 따라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해 환자가 피해를 입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처사다.
특히 일부 병원에서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암 수술, 출산, 디스크 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선다, 이로 인한 의료 공백이 정부나 부담으로만 귀결되는건 아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그렇다고 국민건강은 흥정이 대상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응급·위중한 수술만은 정상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하루하루 고통받는 환자들을 방치해 피해를 입게 하는 것은 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의료 수가라든지 지역과 수도권 불균형으로 인한 역차별 문제 등도 연관돼 있지만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슨이유에서라도 의사들은 의대 증원의 대폭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명백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증원에 대한 구체적 입장도 당장 내놓아야 한다. 지금도 인구 대비 의사 수가 OECD 최하 수준인데, 앞으로 급속한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강경한 정부도 조정이나 논의의 명분이 생길 것이다. 정부도 한꺼번에 2000명을 증원한다는 기존 입장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아무리 급해도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갑자기 2000명 늘리면 당장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료계 주장이 일리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 역시 총선 유불리 등 정치적 이해만 좇는 접근 대신 사회적 중재에 적극 나서야 한다. 표를 의식해 입에 발린 정치적 레토릭을 국민은 바라지 않는다.공당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행동하는 책임감이 필요한 때이다. 진영논리로 사회적 갈등만을 조장해온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이번 갈등 조정을 위해 정부·의료계 간의 대화 중재에 적극 나서여 한다. 특히 야권은 정부 여당일이라며 잘 해결되면 남좋은 일이니 강건너 불구경만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현명한 국민들은 오늘날 정치권을 행동을 기억하고 분명히 결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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