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는 술이 술이야?” 반문해도 ‘무알맥’

서혜미 기자 2024. 2. 2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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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MZ세대 중심으로 음주 트렌드가 바뀐다… ‘무알맥’ 시장을 이끄는 사람들
국내 최초 비알코올 맥주를 양조하는 ‘부족한녀석들’ 황지혜 대표가 먹어본 다른 나라의 비알코올 맥주들. 정용일 선임기자

직장인 김아무개(32)씨는 2021년부터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홈파티에 초대받을 때면 편의점에서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를 사서 갔다. “맛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시는 걸 보기만 하면 재미없어서” 택한 고육지책이었다. 바깥 식당에선 탄산음료를 주문하는 게 일상이었다. 2~3년 전과 비교하면 변화를 체감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무알코올·비알코올 제품이 늘었고, 알코올이 없는 와인이나 맥주를 파는 곳도 생겨났다. 김씨는 “유럽에 갔을 때 정말 다양하고 맛있는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를 손쉽게 찾았는데, 그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먼 것 같다”고 말했다.

술 멀리하지만 즐기는 MZ 음주문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술을 멀리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기존 주류를 대체하기 위한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는 ‘술에 취하지 않은’을 뜻하는 영어단어 ‘Sober’와 ‘호기심이 많은’을 뜻하는 ‘Curious’를 더해 만들어진 신조어다.

무알코올과 비알코올을 가르는 차이는 단순하다. 알코올이 전혀 없다면 무알코올, 1% 미만 소량의 알코올이 함유된 것이 비알코올(Non Alcoholic)이다. 현행법상 주류는 알코올을 1% 이상 함유해야 하는데, 알코올 함유량이 1% 미만인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는 주류가 아닌 음료로 분류된다.

2024년 2월2일 서울시내 한 마트의 주류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무알코올 맥주와 비알코올 맥주들. 서혜미 기자

주류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영국의 IWSR은 2023년 전세계의 무알코올·저알코올(3.5% 이하) 시장 규모를 13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했다. 이 기관은 전세계 관련 시장의 2023~2027년 연평균 성장률을 6% 이상, 특히 미국은 15% 이상으로 내다봤다. 실제 미국의 유기농 식품 전문 판매 체인인 홀푸드마켓에서 2023년 가장 많이 팔린 맥주는 비알코올 맥주인 애슬레틱이었다.

국내 무알코올·비알코올 시장은 이제 막 태동한 단계다. 10조원에 이르는 전체 주류시장 규모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국내 주류업계는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 시장 규모를 2012년 12억원 수준에서 2018년 140억원, 현재는 500억~600억원 규모로 추정한다. 국내 최초 무알코올 음료인 ‘하이트제로 0.00’의 연간 판매량은 2012년 약 600만 캔에서 2022년 2700만 캔으로 4.5배 증가했고, 2022년 매출은 전년보다 34% 늘었다.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는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맛 음료 시장은 품질 개선, 맛·풍미 다양화가 이뤄진다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유의 밍밍함 해결 위해 조리법만 1년 연구

2024년 2월7일 황지혜 ‘부족한녀석들’ 대표가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에 있는 양조장에서 비알코올 수제맥주를 따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가장 큰 장벽은 맛이다. 술을 마시던 사람은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 특유의 밍밍함과 끝에 남는 단맛을 쉽사리 알아챈다. 실제 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황지혜 ‘부족한녀석들’ 대표가 2021년 창업에 뛰어든 이유도 ‘맥주 덕후’인 그가 맛본 음료들이 “맥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충격적인 맛”을 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맛있게 술을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은 국내 유일한 비알코올 수제맥주 양조장 창업으로 이어졌다.

황 대표가 만드는 어프리데이 맥주는 알코올 함유량이 0.4~0.5%다. 1% 미만의 알코올이 들어간 맥주는 크게 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알코올은 맥아즙에 첨가된 효모가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대기업 제조업체는 발효를 거치지 않고 맥아즙에 곧바로 홉과 향을 첨가하거나, 일반 맥주와 같은 과정으로 만들되 나중에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맥주 고유의 풍미가 사라지기 쉽다. 마지막으로, 어프리데이 맥주가 쓰는 일부 당만 발효시키는 특수효모로 발효를 거쳐 알코올 생성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수제맥주를 만들 때 쓰는 설비를 사용하고 같은 과정을 거치기에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실제 조리법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맥아의 맛, 효모에서 나오는 발효부산물의 맛, 홉에서 나오는 맛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알코올의 역할이 극단적으로 제한되니 기존 맥주와 비슷한 풍미를 내기 쉽지 않았다. 황 대표는 “맥주는 발효와 숙성을 해야 하므로 한 번 만드는 데 2~4주가 걸린다. 한 번에 20리터를 만들 수 있는 테스트 양조를 10번 넘게 했다”고 설명했다.

‘부족한녀석들’이 생산하는 비알코올 맥주들. 정용일 선임기자

그렇게 나온 맥주들은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2022년과 2023년엔 대한민국 주류대상 무알코올 맥주 부문 대상을 받았고, ‘Best of 2023’으로 선정됐다. 국제맥주대회인 KIBA 2023에서 비알코올 맥주 부문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같은 해 아시아비어챔피언십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았다. 입소문을 타고 식음료 업장 등에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을 의뢰하는 등 2023년 업장 20곳에 어프리데이 맥주를 공급했다. 황 대표는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한해 한해가 지날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며 “진짜 맥주보다 더 맛있는 비알코올 맥주를 다양하게, 취향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술 못 먹는 사람 위한 플랫폼 ‘마켓노드’

그런가 하면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만 파는 온라인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김소희 대표가 2023년 5월 창업한 ‘마켓노드’는 맥주, 와인, 증류주 등 다양한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를 소비자에게 판다. 김 대표는 체질상 술이 잘 받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단순 친교 모임이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술을 빼놓을 수 없었다. 술을 못 하는 사람도 한두 잔 마셔야 하고, 잘 마시는 사람도 술에 취할 때까지 마시는 음주문화가 싫었다. 그는 “잘못도 아닌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유를 마치 변명해야 하는 상황처럼 느껴져서 불편함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창업을 고민하던 김 대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실제 본인이 무알코올·비알코올 소비자로서 느꼈던 유통의 불편함이나 제품의 다양성 부족을 해소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 미국에선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만 취급하는 온·오프라인 가게가 생기고, 이런 음료만을 파는 바도 있었다. 일본도 2~3년 전부터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전파될 것 같았다. 김 대표가 국내 잠재고객 조사를 진행했을 때에도 ‘그런 게 마련되면 먹을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 대표는 “없어서 마시지 못할 뿐이지, 그 기반이 마련되면 시장이 커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세계 각국에서 만든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마켓노드 제공

현재 마켓노드에는 약 120개 제품이 입점했는데, 수입사가 직접 고객에게 배송하거나 마켓노드가 사입해서 고객에게 배송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김 대표가 모두 시음해보는 것은 물론, 제조사와 수입사의 철학도 고려한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고, 오프라인 행사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팝업 형태이긴 했지만, 마켓노드는 2023년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알코올·비알코올 음료만 파는 ‘논알코올 바’를 열었다. 대중교통이나 자동차로 오가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공간도 33~49㎡(10~15평)에 불과했지만, 6일 동안 약 500명이 이곳을 찾았다. 올해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에 분기별로 마켓노드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행사를 계속하려 한다. 무알코올이 취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문화와 물리적 기반이 확산하려면, 직접 경험해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창업 초 주된 고객층은 30대 후반~40대 중반이었지만, 최근 3~4개월은 1990년대생 비중이 더 커졌다. 김소희 대표는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전파해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많이 끌어야 이 문화가 잘 정착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분들에게 많이 소구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4년 2월12일 채호 ‘선유혼합음료’ 오너 바텐더가 기자에게 추천한 목테일(무알코올 칵테일) 메뉴를 만들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흉내 내는 칵테일’ 들어보셨나요

“목테일이 뭐예요?”

서울 영등포구 ‘선유혼합음료’의 채호 오너 바텐더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가 ‘목테일’(Mocktail)을 전문으로 하는 ‘칵테일 카페’다. 목테일은 ‘흉내 내는’ 뜻의 영어단어 ‘Mock’과 칵테일을 합친 단어로, 술이 들어가지 않은 칵테일을 뜻한다. ‘논알코올 칵테일’이라고 표기하면 쉽지만, 그가 메뉴판에 이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 단어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바텐더 경력이 14~15년인 베테랑이다.

다른 바도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칵테일을 팔지만,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아 구색 맞추기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선유혼합음료에선 커피와 목테일, 위스키 등 다양한 음료를 파는데, 목테일 메뉴만 10개에 이른다. 전체 품목에서 3분의 1 이상이다. 저녁 영업시간이 길어지면서 비중에 변화가 생겼지만, 채호 바텐더는 “(판매량을) 전체 10이라고 했을 때 칵테일이 5, 목테일이 4, 나머지가 1 정도”라고 말했다.

크게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다. 음식과 비교하면 음료 문화는 커피에만 치우쳐 있었다. 미식보다는 잠을 깨기 위해 먹는 커피,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뿐이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미식 경험은 한정적이었다. 바를 찾은 많은 손님도 술맛이 전혀 나지 않는, 낮은 도수의 칵테일을 주문하곤 했다. ‘술이 아니라 그냥 칵테일 같은 걸 마시고 싶은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목테일이 적합할 것 같았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혼합음료’에서 판매하는 ‘목테일(무알코올 칵테일) 메뉴들. 김진수 선임기자

국내에선 전례가 없다시피 한 까닭에 채호 바텐더는 “참고할 만한 게 많지 않아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맞춰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알코올이 들어갔던 칵테일을 무알코올로 만들 때는 “똑같이 재현한다기보다는 그 뉘앙스를 가지고 목테일만의 느낌을 살린다는 쪽으로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카페 형식을 빌린 바이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 얼마 전 설 연휴 기간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다. 채호 바텐더는 “자녀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거나, 진짜 대가족이 와서 칵테일과 목테일을 함께 마시는 모습이 되게 좋아 보였다”며 “바텐더의 추천을 받아 음료를 주문하는 생소한 문화를 신기해하거나 재밌어하면서 전 세대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내가 지향하는 모습 같다. ‘에스프레소 바’라는 게 정착됐듯이, ‘칵테일 카페’라는 말을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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