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찾기 실패…HMM이 몰고 올 후폭풍
하림그룹의 HMM 인수가 최종 무산됐다. 7주간 협상을 이어갔지만 채권단과 하림그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양측 모두 협상 무산에 따른 여파가 상당하다. 하림은 해운업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려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공적자금 회수’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HMM의 앞날도 안갯속이다. 지정학적 위기로 해운업계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2023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4%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은행, HMM 모두 험난한 파고
2월 7일 채권단은 하림그룹과의 HMM 인수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당초 5주로 한정된 시한을 2주 더 연장할 정도로 치열하게 협상했지만, 틈새를 메우지 못했다. 하림그룹은 막판 협상 과정에서 ▲HMM의 현금 배당 제한 ▲일정 기간 지분 매각 금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등의 조항이 담길 주주 간 계약의 유효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 측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틈이 벌어졌다. 여기에 컨소시엄으로 함께 참여한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기한 예외 적용 요구를 채권단 측이 수용하지 않은 게 결정타가 됐다. JKL파트너스는 사모펀드다. 수익률 관리가 필수다. 그런데 지분 매각 기한이 길어질수록 수익률 관리에 불리해진다. 주가가 높은 시점에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는 탓이다. 의견 차가 벌어지면서 협상은 최종 무산됐다.
양측 모두 협상 결렬로 인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하림은 그룹 성장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하림은 HMM과 팬오션을 주축으로 한 해운업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본업인 양계, 식품, 유통업이 정체에 빠진 상황에서 해운업에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 HMM 인수에 실패하면서 계획은 백지화됐다. 동시에 2세 승계 시나리오가 꼬였다.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 NS쇼핑 이사는 JKL파트너스 시니어 파트너로 이번 협상에 참여했다. JKL파트너스에서 인수 작업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협상을 통해 HMM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면, 그룹 내 입지를 다지고 경영 전면에 나설 동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협상 결렬로 계획이 어그러졌다.
기존 대주주인 산업은행 표정도 밝지 못하다.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지적받은 BIS비율 개선에 실패한 게 뼈아프다. BIS비율이란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만든 은행 재무건전성 지표다. BIS비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국제결제망에서 퇴출된다. 대다수 은행은 BIS비율을 핵심 관리 지표로 설정하고 철저히 관리한다.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업계에 13% 이상 유지할 것을 권한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산업은행의 BIS비율은 13.66%다. 권고 수치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BIS비율 개선이 필수였다. 이를 위해서는 HMM 매각이 절실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HMM 주가가 1000원이 떨어지면 BIS비율이 0.07% 하락한다”고 말한 바 있다. HMM 매각 실패로, 산업은행 BIS비율 개선은 실패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은 BIS비율 개선을 위한 플랜B 찾기에 고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HMM은 위기 상황 속 ‘리더십 부재’라는 리스크를 해결하지 못했다. 현재 세계 해운업계 정세는 한 치 앞을 보기 힘들다. 기존 해운 동맹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가운데, 주요 해운로가 지정학적 위기로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오랫동안 유지된 해운 동맹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선사는 해운 동맹에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 각 회사 자체 물량만으로는 전 세계를 오가는 무역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운 회사들은 서로 해운 동맹을 맺고 상호 물류를 실어주며 경쟁력을 높인다. 실제로 HMM은 ‘디 얼라이언스’ 가입 전, 해운 동맹 정회원 자격을 얻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제 다시 그 어려움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운 동맹 체제는 최근 급변하고 있다. 세계 5위 해운 회사 독일의 하파크로이트가 HMM이 속한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 2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와 함께 새로운 해운 동맹 ‘제미니’를 만들었다. 다른 메이저 해운 동맹 ‘2M’은 아예 해체됐다. 해운업계는 소규모 동맹과 단독 운영하는 대형사 중심으로 해운 동맹 체제가 개편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물류 처리량이 80만TEU에 불과한 HMM은 단독 운행이 힘들다. 새로운 동맹 체제에 가입하지 못한다면, HMM은 다시 위기를 맞을 확률이 높다.
지정학적 위기도 문제다. 주요 해운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대만 해협 분위기가 심상찮다. 중동 무역로인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발발 직전인 상태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무차별로 공격하면서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만 해협은 중국과 대만의 양안 갈등 고조로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 새 주인을 맞지 못한 HMM은 현재 경영진의 판단만으로 이 같은 파고를 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HMM 매각은 어려운 고차방정식
자금력, 해운 업력 가진 회사 없나요
HMM 매각은 산업은행이 가진 기업 중 가장 매각이 어려운 회사로 꼽힌다. 다른 회사 매각 건과 비교하면 풀어야 할 난관이 많다. 이유는 3가지다.
첫째, 해운업의 특성이다. 해운업은 물건을 해외로 내보낼 때 필수인 산업이다. 한국과 같은 수출 중심 국가는 해운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분류한다. 국적 해운사를 외국 기업에 넘기는 일은 드물다. 자본 동원력이 가장 좋았던 독일 기업 하파크로이트가 HMM 인수전에서 탈락한 이유다.
둘째, 국가 간섭이 많다. 국가 수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보니 정부 입김이 거세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하림과의 협상 내내 채권단은 경영권 개입을 시사했다. 해양진흥공사와 산업은행 측은 “국적 해운사기 때문에 일정 부분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하림 측은 “경영권 없이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반발했다. 이는 곧 협상 결렬의 주요 이유로 작용했다.
셋째, HMM의 규모다. HMM은 시가총액 12조원, 보유한 현금성 자산만 1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하림, 동원, LX 등 인수 후보가 발표됐을 때 가장 컸던 우려가 규모 차이였다. 인수하려는 기업보다 HMM 덩치가 더 컸다. 무리한 인수로 ‘승자의 저주’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여론이 다수였다.
각종 요건을 종합하면, HMM을 인수할 곳은 결국 10대 그룹 말고는 없다. 그중에서도 자금력과 해운업 경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생각하면 인수 후보는 현대차, 포스코, 한화, 현대중공업 정도로 줄어든다. 다만, 이들조차 HMM 인수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수출을 위한 해운 업체 현대글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HMM을 인수한다면 물류 시너지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HMM 인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포스코는 새로운 회장이 막 선출된 시점이라 대형 M&A를 진행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해운, 물류업 경험도 전무하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다른 대형 매물인 한화오션을 막 인수한 터라 여력이 없다. 조선업 강자인 현대중공업은 꾸준히 인수 후보에 올랐지만, 인수설이 돌 때마다 ‘전혀 검토한 바 없다’며 강하게 부인해왔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무리하게 매각을 시도하기보다는, 좀 더 좋은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해운업 외부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매각) 절차를 밟으면 외부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매각보다는 최대주주인 정부 측 금융기관과 해양수산부가 중심을 잡고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기다. 2~3년 뒤 산업이 안정화가 된 다음에 민영화를 진행해도 된다. 10조원의 유보금 등 넉넉한 실탄을 활용,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장)의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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