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7월 14일 ‘탈북민의 날’
북에서 남으로 온 사람들은 시기별로 달리 불렸다. 과거엔 ‘실향민’ ‘귀순자’였는데 1990년대 중반 굶주리다 못한 북 주민 수십만 명이 중국으로 쏟아져 나오자 ‘탈북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탈북자의 한국 입국 통계도 이때부터 작성됐다. 2002년 1년간 1000명을 돌파해 김정일 말년엔 연간 3000명에 육박했다. 김정은 집권 후 단속이 강화되자 1000명대로 돌아갔다. 코로나 기간엔 두 자릿수로 줄었다.
▶누적 탈북자는 작년 말 현재 3만4078명이다. 72%가 여성이다. 이들이 중국서 겪는 일은 비극적이고 참혹하다. 헐값에 팔려 와 중국인과 강제 결혼한다. 말이 결혼이지 감금과 성·노동 착취를 당하는 노예다. ‘조선 돼지’로 불리며 숨어 산다. 북에선 김정은 노예, 중국선 중국인 노예다. 강제 북송되면 짐승 취급을 받는다. 16년 전 정도상의 단편집 ‘찔레꽃’에도, 최근 배우 유지태가 연재한 웹툰 ‘안까이’에도 묘사된 참상이다. 최악의 북한 여성 인권 집단 유린 사태가 중국에서 30년째 벌어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오면 탈북 브로커에게 정착금을 거의 다 줘야 한다. 한국에선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감격을 누리지만 경쟁에 익숙지 않은 탈북민들에겐 초기 어려움이 크다. 사업으로 성공한 전철우씨, 배우 출신 김혜영씨 같은 유명 탈북자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억척같이 번 돈은 송금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연간 2000만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북에선 엄청난 돈이다. 이 돈이 장마당을 통해 북 전역에 스며든다. 이 ‘원시 시장경제’가 언젠가 김씨 왕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탈북민들은 한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애국심도 강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한 탈북 대학생은 민주당 의원에게 “변절자 ××”란 폭언을 들었다. 다른 민주당 의원은 태영호 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했다. 집단 탈북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을 북송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북송되는 악몽을 꾼다는 탈북민이 적지 않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탈북민이다. 이들로 인해 북한 사회에 한국에 대한 선망이 생겨나 퍼지고 있다. 김정은에겐 대북 전단, 대북 확성기보다 무섭다. 탈북민이 성공적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정부가 7월 14일을 ‘탈북민의 날’로 제정한다. 7월 14일은 1997년 북한이탈주민법이 처음 시행된 날이다.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 부른다. 정말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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