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정치네컷] 입을 막는다? 민심은…또 등장한 `입틀막`
오바마 전 대통령의 "내보낼 필요 없다"
尹의 과잉경호'묵인' 대응과 비교돼
◇A컷
입을 막는다고 민심이 막아지나…또 등장한 '입틀막'윤석열 정부가 '입틀막 정부'(입을 틀어막는 정부)라는 논란에 휩쌓였다.
지난달 18일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를 하던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국정기조를 바꿔달라'고 큰 소리로 요구하면서 윤 대통령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하자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 강 의원의 입을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내보낸 일이 있은 뒤 한달 만에 같은 일이 재현된 탓이다.
지난 16일 윤 대통령이 참석한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는 카이스트 졸업생이자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인 신민기씨가 윤 대통령의 축사 도중 '부자 감세 철회하라. R&D 예산 보강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소리를 질러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신씨는 강 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입을 막히고, 팔다리가 들려 행사장밖으로 강제퇴장 당했다.
강제퇴장을 당한 당사자인 신씨는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윤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신 대변인은 전교조 대전지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저는 어떠한 위해를 가할 의도가 없었다"며 "경찰 조사 배경으로 제기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 제가 한 행동이 누구에 대한 업무방해인지, 그것이 표현의 자유로 용납되지 않는 수준의 범법행위였는지 궁금하다"고 따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과잉경호 비판이 이어졌다.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학위복을 입은 위장 경호원들에 의해 학우가 팔다리가 들린 채로 입을 틀어막히며 끌려가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학생들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고 짓밟힌다면 이를 수호하기 위해 직접 발언하고 행동하겠다. 학교 측은 사건 경위와 학교 차원의 대응을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신씨가 속해잇는 녹색정의당의 김준우 상임대표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찰 연행 과정에서 바로 불법적 구금 행위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 만큼 대통령 경호처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법적 대응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서 "사과탄(최루탄의 일종)과 백골단이 다시 등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비판했고, 강선우 대변인은 지난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카르텔 운운하며 R&D 예산을 날려놓곤 염치없이 카이스트 졸업식을 찾은 것 자체가 기가 막히는데,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잡아들어 끌어내느냐"며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사지 결박 사태에 대통령실은 '소란행위자 분리', '불가피한 조치'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대변인은 "그야말로 공포정치의 극단이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자유도 없느냐"며 "윤 대통령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모두 위해행위냐. 과잉 진압이 아니라 폭행,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고 문제 삼았다. 이어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왜 자꾸 국민의 입을 틀어막느냐"며 "국회의원도 입틀막, 사지 결박, 바른말 하는 국민도 입틀막.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냐. 이러니 시중에 '윤두환(윤석열+전두환)의 부활'이라는 말이 도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여권에서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위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사 방해 행위"라고 규정했다. 윤 원내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행사에서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소란 행위를 벌여 경호처 대응을 유도하고 이에 대해 유신정권이니 백골단이니 하는 비난을 퍼붓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목적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행태가 떠오른다는 국민들도 있다"며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와 금도를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며 "이는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앞서 입장을 밝혔다.
◇B컷
경호처 대응 '묵인'한 尹에 오바마·노무현 소환2차례 과잉경호 논란이 발생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처는 묵인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경호처에 의해 들려나갈 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사 참석자들과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눴고, 지난 16일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도 소리를 지르다 끌려나간 신씨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축사를 이어나갔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은 신씨가 행사장에서 쫓겨나던 그 순간에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를 위해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축사를 하고 있었다.
지지율이 한참 바닥권에서 머물던 시기 "국민은 늘 옳다"면서 민심을 들으라 했던 윤 대통령과는 사뭇 결이 다른 행보에 아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같은 상황에서 보여준 태도와 윤 대통령의 대응이 비교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1월 25일 이민정책 개혁방향을 설명하는 연설 도중 청중 가운데 한인계 청년인 홍주영씨가 "강제 추방을 중단해달라"고 외치며 연설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호요원들이 홍씨를 제지하려고 다가가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손을 들어 만류하면서 "내보낼 필요 없다"(These guys don't need to go)고 말했다. 이어 "저 젊은이의 열정을 존중한다"(I respect the passion of these young people)고 했다.
노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2007년 4월 4일 청와대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은 서명식을 시작하려는 순간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 2명이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앞으로 나와 법안 제정을 요구하자 제지하는 대신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얘기를 하면 시간을 주겠다"고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두 활동가가 시위가 계속 이어가자 더 단호하게 "말씀 중단하지 않으면 바깥으로 모시겠다"고 경고했고, 그럼에도 이들이 응하지 않자 퇴장 조치를 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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