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1000만원대 전기차, 어떻게 가능할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4. 2.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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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무리 놀라운 미녀라도 두 번째 만남에서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이 말은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을 잘 보여준다. 이는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신제품이 나올 예정이라는 뉴스를 접하면 내 삶의 질을 바꿀 것 같아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막상 손에 들어오면 하루 이틀 반짝한 뒤 쓰면서 의식하지도 않은 일상이 돼버린다.

전기차도 그런 예가 아닐까. 2000년대 들어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배터리로 장난감이 아닌 진짜 차가 작동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승차감이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수년 전 전기버스를 처음 탔을 때 디젤엔진 특유의 덜덜거림 없이 정숙하게 운행하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제는 두세 대에 한 대꼴로 전기버스라 이런 감흥도 덜하다. 수년 뒤 100% 전기버스로 바뀌어 비교할 대상이 사라지면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1991년 리튬이온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 뒤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져 적용 범위가 모바일 기기에서 자동차로 넓어지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도 여러 면에서 성능과 비용 개선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흑연인 음극에 실리콘을 더하거나(1) 리튬 금속으로 바꾸거나(2) 고체 전극을 쓰거나(3) 금속산화물인 양극을 황이나(4) 공기(산소)로(5) 바꾸거나 아예 리튬을 나트륨으로 바꾸는 연구다(6). 네이처 제공

● 나트륨배터리 전기차 출시 임박

지난 2월 8일자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전기차 배터리 혁명’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보다 다시 전기차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수년 전 국내 업체가 처음 전기차를 출시한 이래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값이 너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은 좀 내렸지만 그래도 필자 형편에는 여전히 무리다. 

그런데 기사에 놀라운 얘기가 실린 것이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이 올해 안에 1만 달러(약 1300만 원) 내외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싸다고는 하지만 이 가격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닐까. 이런 극단적인 저가의 비밀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출혈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한 덕분이다. 바로 나트륨배터리다.

오늘날 제품에 적용되는 배터리는 곧 리튬배터리를 의미한다. 리튬만큼 최적의 효율을 보이는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적용 범위가 모바일 전자제품에서 자동차로 확대하며 리튬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원전쟁이 일어나는 배경이다. 작년에는 일시적으로 리튬 가격이 7배나 뛴 적도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50년 무렵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량은 14 TWh(T는 테라로 10의 12승이다)로 금속 1400만 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리튬 생산량은 연간 13만 톤 규모로 한참 못 미친다. 따라서 리튬이 아닌 다른 금속을 쓰는 배터리 개발이 시급하다.

리튬 대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나트륨이다. 주기율표에서 리튬 바로 아래 놓인 나트륨은 물리화학적 특성이 서로 비슷하다(주기율표 1족에 속하는 이들을 알칼리 금속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도 나트륨은 지구 지각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한 원소라 0.002%에 불과한 리튬에 비하면 거저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트륨은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온의 전하량은 +1로 같지만, 나트륨의 원자량이 23으로 7인 리튬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이다(에너지 밀도는 전하량에 비례하고 원자량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무게 절감이 중요한 휴대전화나 노트북 같은 모바일 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도 나트륨배터리는 쓸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다만 무게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리드 용 충전(에너지 저장) 장비에는 나트륨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실제 지난해 중국은 칭다오의 데이터센터에 나트륨배터리를 써서 그리드 규모의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을 구축했다. 갑작스러운 정전이나 날씨에 따라 효율이 들쑥날쑥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의 전력 안정성을 위해 구축하는 그리드는 탈화석연료 에너지 공급체계 구축에 필수적임에도 비용이 큰 걸림돌이다. 중국 업체들은 음극과 양극 소재 혁신으로 에너지 밀도를 150Wh/㎏으로 높이고 수명을 최대 3000사이클까지 늘린 나트륨배터리를 개발해 적용했다. 

기사에 따르면 전기차에 적용되는 나트륨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그리드용보다도 약간 더 높아 한번 충전에 250~300㎞를 주행할 수 있다. 이는 현재 600㎞에 가까운 테슬라의 모델S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초기 리튬배터리 전기차의 주행거리 정도다.

엄청난 차이 같지만 사실 인구가 과밀하고 이동 거리가 짧은 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충전이냐 두 번 충전이냐의 문제다. 나트륨배터리 전기차 가격이 1만 달러라면 가성비가 꽤 높은 것 아닐까. 만일 우리나라에도 수입된다면 살까 말까 갈등이 생길 것 같다.

● 칼슘배터리로 휴대전화 충전

리튬의 대안으로 나트륨만 있는 게 아니다. 주기율표에서 리튬과 나트륨 바로 오른쪽에 있는 2족 알칼리 토금속도 유력한 후보로, 이 가운데 나트륨 옆에 있는 마그네슘과 마그네슘 아래 칼슘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참고로 리튬 옆의 베릴륨은 지각 매장량이 리튬보다도 훨씬 적어 검토 대상이 아니다. 반면 마그네슘은 지각의 2.3%, 칼슘은 4.1%나 되기 때문에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2족 원소는 2가 이온(+2)이라 원자 당 전하 운반량이 1족 원소인 리튬의 2배로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 또 녹는점이 높아 안정성도 크다. 그럼에도 아직 마그네슘이나 칼슘을 전하 운반체로 쓴 배터리가 상용화되지 못한 건 수명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방전과 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전극 구조에 문제가 생겨 전압과 전류가 차츰 떨어지고 얼마 안 가 전력이 수명 기준선 아래로 내려간다(전압과 전류를 곱한 값이 전력이다). 

마그네슘과 칼슘을 비교하면 원자량이 24인 마그네슘이 40인 칼슘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을 것이므로 배터리 소재로 더 나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 밀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인 환원전위 값은 칼슘이 더 낮기 때문이다(수소의 환원전위를 기준으로 한 음의 값이므로 낮을수록 효율적이다). 따라서 마그네슘보다 칼슘 연구가 좀 더 활발하다. 

그럼에도 아직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칼슘이온은 리튬이온에 비해 덩치가 커 방전과 충전 과정에서 전극에 끼어들거나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전하량이 커 주변의 전해질을 이루는 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므로 이동 속도도 느리다. 결국 방전과 충전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져 수명이 다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전극(음극재와 양극재)과 전해질을 개발해 서로 궁합이 맞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기차 배터리 혁명을 다룬 특집기사가 실린 8일자 ‘네이처’에는 칼슘배터리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연구 결과를 보고한 논문도 실렸다. 푸단대 고분자분자공학실험실을 비롯한 중국 공동연구자들은 상온에서 700회 이상 충전할 수 있는 칼슘산소배터리를 개발했다.

공기배터리라고도 부르는 산소배터리는 양극재의 주요 구성 성분이 공기 중의 산소분자(O2)인 배터리다. 산소배터리는 양극의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어 현재 널리 상용화된 이온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더 높게 구현할 수 있지만 짧은 수명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아직 상용화되지 못했다.

최근 개발된 칼슘산소배터리의 구조를 보여주는 도식이다. 아래는 칼슘 금속으로 이뤄진 음극이고 위는 배열된 탄소나노튜브(aligned CNT) 시트 형태인 양극이고 그 사이에 여러 분자를 함유한 젤 형태의 전해질이 있다. 배터리 방전이 일어날 때 음극에서는 칼슘원자가 전자를 잃고 이온으로 떨어져 나가고 양극에서 칼슘이온과 공기 중 산소가 만나 과산화칼슘이 만들어진다. 충전 과정에서는 역반응이 일어난다. 네이처 제공

칼슘산소배터리가 작동, 방전할 때 양극에서는 칼슘이온(Ca2+)와 전자(2e-), 산소분자(O2)가 만나 칼슘산화물을 만든다. 산소분자의 입장에서는 환원반응이 완전히 일어나면 산화칼슘(CaO)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산소원자 사이의 결합(-O-O-)이 끊어져야 하므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게다가 충전 과정에서 역의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산화칼슘은 너무 안정한 상태라 온도를 꽤 올려야 한다. 

연구자들은 방전의 최종 산물이 환원반응의 중간 단계인 과산화칼슘(CaO2)이 되게 하는 양극재와 전해질의 조성을 찾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산소원자 사이의 결합을 끊는 반응이 필요없을 뿐 아니라 충전 과정에서 역의 반응도 쉽게 일어나 상온에서 가능하다. 이는 실용성과 안전성의 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연구자들은 탄소나노튜브를 일렬로 배열한 시트 형태로 양극 골격을 만들어 그 표면에서 산화환원반응이 일어나게 하자 과산화칼슘이 만들어졌다. 분석 결과 탄소나노튜브의 전자전달 메커니즘이 산화칼슘보다 과산화칼슘이 되는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전해질에는 칼슘이온을 효과적으로 감싸 음극과 양극 사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성분을 넣었다. 

4실 형태로 만든 칼슘산소배터리 단위(위)를 짜서 만든 천 형태의 배터리는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용량이다(아래). 앞으로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웨어러블 배터리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칼슘산소배터리 단위를 실(섬유)의 형태로 만들었다. 탄소나노튜브 몇 가닥을 감싼 칼슘 금속 음극재를 중심에 두고 그 바깥에 젤 형태인 전해질이 그 바깥에 탄소나노튜브가 양극재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구조다. 이 실을 짜서 천 형태로 만든 배터리는 용량이 커져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을 정도다. 웨어러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배터리의 기본 특성은 전하 운반체인 금속 이온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그럼에도 상용화 여부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등 구성요소의 성능과 호환성에 따라 좌우되므로 재료과학 분야에서 연구가 치열하다. 최근 중국이 배터리 연구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인력이 워낙 풍부해 수많은 조합을 실험으로 구현해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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