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횡사'에 묻힌 디올백... 민주당 엄습한 '2012 총선 포비아'
전략, 공감 없는 '맹탕' 심판론만 기대 낙관
공천 갈등에 지지율 하락세, '50일의 저주'
"요행만 바라는 감나무 전략은 필패의 길"
"오만함만"... '야당심판론' 또 되치기 당하나
"이대로 가다 2012년 때처럼 크게 질까 두렵습니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
밀실·비선 공천 갈등으로 벌집 쑤신 듯 혼돈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 '2012 총선 포비아'가 회자되고 있다. 이명박(MB) 정부심판론에만 기대 과반 의석을 자신하며 일찌감치 축배를 들었다가, 공천 파열음이 잇따르며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과반 의석을 내줬던 2012년 총선 참패의 악몽이 재현될까 봐서다.
2012년 총선 때도 MB심판론만 부르짖는 것 말고는, 선거 판을 장악할 어젠다는 부족했다. 계파별로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패거리 공천'이 부각되며 몸살을 앓았다. 선거 전략도, 공천 원칙도, 인적 쇄신도 없이 친이재명(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의 '내전'으로만 치닫는 2024년 민주당 모습과 데칼코마니라는 평가다. 민주당이 공천 갈등 국면을 끊어낼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면 2012년 총선 결과(127석)보다 더 많이, 뼈아프게 패배할 것이란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①심판론 견고해도, 野 지지율 하락 "50일의 저주"
2012년 4·11 총선 50일을 남겨놓고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전신) 지지율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도 공천 갈등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당시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 부재 속에 이른바 '노이사(친노·이대 라인·486)' 중심의 계파 나눠 먹기 공천으로 구(舊)민주계의 반발이 커졌고, 모바일 경선 과열에 따른 투신 사건까지 불거지며 내홍은 극에 달했다.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계기로 고공행진하던 지지율은 총선 50일 전인 2월 21일 이후 새누리당에 뒤집혔고, 3월에는 새누리당 우위가 쭉 굳어졌다.(한국갤럽 기준) 정권심판 민심은 솟구치는데, 야당 지지율은 하락세로 패배의 전조등이 켜진 셈이다. 결국 민주당은 심판론으로 움켜쥔 득점 찬스를 공천 갈등이란 자살골로 걷어차며, 새누리당에 총선 승리를 '헌납'했다.
② '노이사' 패권 공천 갈등, 맹탕·재탕 심판론 '데자뷔'
'50일의 저주'는 12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로 지지율에 탄력이 붙었지만, 총선을 50일 목전에 두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국갤럽)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역전당하기 시작했다. '친명 대 비명·친문' 갈등 속에 '자객, 학살, 밀실, 비선, 사천' 등 공천을 둘러싼 온갖 잡음이 당을 뒤덮고 있다. 비명계 죽이기라는 반발 속에 '비명횡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21일 "총선 승부처는 공천이다. 잘못하더라도, 잘하는 것처럼 포장해도 모자랄 판에, 경쟁하듯 싸움질만 중계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발표된 공천이 아니라 발표할 공천을 놓고 앞서 잡음이 나오는 건 지도부의 미숙함 탓이 크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맹탕·재탕 심판론'도 문제다. 박경미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심판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심판하고 대안을 주겠다는 것인지 민주당은 뾰족한 답이 없다"고 꼬집었다. 가령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는 의대 정원 문제도 민주당이 필수의료 강화로 맞받았어야 했지만, 타이밍을 실기해 이슈 주도권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 정부 배후론'처럼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심판 이슈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안이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심판론도 타깃과 우선순위를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③민주당은 '오만함'... "이러다 또 '야당심판' 당할라"
"국민은 민주당에 정권을 줄 준비를 했지만, 민주당은 요행을 바랐다.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마치 감이 입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2012년 4·11 총선 다음 날, 박지원 당시 최고위원의 성토
2012년 총선 다음 날, 박지원 당시 최고위원은 상대 진영의 실정만 기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한명숙 지도부의 무능함과 안일함이 총선 패배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반사이익만 노리다 실패하는 감나무 전략, 그 역설을 알리는 일침이었다.
실제 2012년 총선에서 참패했던 민주당을 지배한 키워드는 '오만함'이었다. 한국일보가 그해 2월 트위터에 올라온 총선 관련 글 253만3,043건을 분석한 결과, 민주당과 연관도가 가장 높은 심리단어는 '오만하다', '실망스럽다', '방자하다'였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중도 표심을 흡수하고 청년 정치인들을 전진 배치해 전방위 쇄신에 나섰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에 대해 '새롭다'는 서술어가 가장 많았던 것과 분명한 대비였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2012년 민주당도, 2024년 민주당도 가장 큰 문제는 오만함은 있고, 절박함은 없다는 거다"라고 했다. 수도권 표밭을 다지는 한 민주당 인사는 "'도대체 민주당은 왜 맨날 싸우기만 하느냐'며 "윤석열이 아니라 이재명이 져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심판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이재명 대표는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인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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