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두 번 죽었다[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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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최대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모집하기 위해 올린 공고문이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를 제대로 키우겠다고 올린 글이 선후배 의사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외과계 교수는 전공의들이 수술을 앞두고도 법정근로시간을 따진다고 토로했다.
다른 전공의는 의사단체 궐기대회에서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며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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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중환(重患)을 만나고 싶은가?”
지난해 말 국내 최대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모집하기 위해 올린 공고문이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세상 모든 중환자가 몰려와 수련 과정은 정말 힘들고 고될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고 믿는다.” 대다수 누리꾼은 의사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다면서 존경심을 표했다. 의사 사회에선 정반대였다. “제정신으로 올린 글이냐” “아직도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바보가 있냐” 등 비웃음이 쏟아졌다. 요즘 수련병원들은 당직과 콘퍼런스를 줄여 수련이 편해졌다고 홍보한다. 전공의에게 기본기를 충실하게 가르치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를 제대로 키우겠다고 올린 글이 선후배 의사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단면은 흔하다. 업의 본질을 거스르는 일도 많다. 의대 수석이 ‘메스’ 대신 ‘미용 레이저 기기’를 잡는 세태다. 한 대학병원 외과계 교수는 전공의들이 수술을 앞두고도 법정근로시간을 따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QOL(삶의 질을 뜻하는 의료계 용어)이 중요했다면 의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에 매여 있어 힘든 직업이란 이유에서다.
의대 증원에 맞서 전공의들은 가장 먼저 병원을 떠났다. 최근 한 전공의는 사직 사유로 ‘국민의 적개심’을 들었다. 국민이 의사에게 등 돌린 이유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여론만 힐난한 것이다. 의사는 왜 외면당할까.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전공의는 밥그릇만 중시한다는 비난이 괴롭다면서도 피부미용 의사로 살겠다고 했다. 소아환자들을 내버려둔 채다. 다른 전공의는 의사단체 궐기대회에서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며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집단행동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글픈 건 젊은 의사들 모습이다. 전공의 수천 명은 병원을 마비시키고 환자들을 내팽개쳤다. 그 순간 모든 명분을 다 잃었다. 파업 등 위력을 과시하던 기성세대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정부를 매번 무릎 꿇린 학습효과 탓에 집단사직도 쉽게 행동으로 옮겼다. 논리도 같다. 전공의들은 격무에 시달린다면서도 의대 증원은 반대한다. 경쟁자가 늘면 희소가치가 떨어져서다. 수익도 준다.
히포크라테스는 두 번 죽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환자 목숨을 볼모로 삼아서다. 수십 년간 모든 파업에서 의사들은 전승을 거뒀다.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막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는 고된 현장에서 환자를 지키는 동료 의사들을 욕보이는 말이다. 금도(襟度)도 넘었다. 전 의사단체장은 SNS에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썼다. 틀렸다. 민도가 낮은 이는 국민을 폄훼한 의사들이다. 19년째 의사 공급이 통제돼 경제적 이익과 기득권이 극대화된 결과다. 이들이 의사의 표준으로 국민 뇌리에 자리 잡아선 안 될 일이다. 이번 집단행동은 의료 개혁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있다. 국민 생명이 의사의 밥그릇을 지키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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