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의기후 close-up ] 세계 요가인들, 룰루레몬에 ‘청원’ 보낸 이유
‘요가복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 1998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세계 요가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2022년 매출 81억달러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95억달러(약 12조7000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에 1만2000여명의 직원, 650개 이상의 매장을 두고 있다. 룰루레몬은 한국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 서울에 첫 매장을 열며 한국 시장을 공략한 이래 2024년 1월 현재 20개 매장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룰루레몬을 키워온(?) 요가인들 수 천명이 최근 회사측에 청원을 보냈다. 이유는 기후위기, 즉 탄소배출 문제 때문이다.
수 천명 요가인들, 청원한 이유
2024년 1월 기준 전세계 7000명 이상의 강사와 수강생들은 환경단체 ‘스탠드.어스(Stand.Earth)’와 액션 스피커 라우더(Actions Speak Louder)가 추진해온 청원서에 서명하며 룰루레몬의 공급망을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베트남 스리랑카 캄보디아와 같은 국가에서 옷을 생산할 때 온실가스 주범으로 거론되는 석탄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룰루레몬의 상당수 옷들이 석유에서 추출한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탄소 집약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많은 의류 업체가 그렇듯 해외 공급업체 중 상당수가 원단 마감 및 염색 등의 과정에서 석탄 에너지에 의존한다. 석탄은 (여전히) 싸다.
둘째, 룰루레몬은 기업 이념으로 “Be human. Be well. Be planet.”을 외쳐왔다. ‘인간, 웰빙, 지구’를 강조해온 회사가 정작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에 의존한다는 것은 특히나 모순이다.(사실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그린 워싱’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룰루레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회사가 소유하고 운영하는(owned and operated) 시설을 100% 친환경 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해 왔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2022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해당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78%가 감소했다. 하지만 핵심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몇몇 시설들이 아니다. 탄소 배출은 재료(옷감) 수집부터 - 제조 - 유통 및 공급 -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서 만드는 일반 자동차들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현대자동차 본사는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뒤에 이 개념, 즉 Scope 1,2,3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겠다).
실제 대변인도 룰루레몬의 배출량 대부분이 ‘공급망’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주요 공급업체가 ‘탄소 감축 로드맵’을 채택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앞서 언급한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공급망의 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129%나 증가했다. 청원을 주도한 환경단체 ‘스탠드.어스’에 따르면, 룰루레몬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60%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추세라면 2030년 목표보다 무려 9배나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라다, 페라가모 등 명품 ‘F’
지난해 ‘스탠드.어스’는 유명 의류 기업들이 화석 연료 의존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명 기업 43개를 대상으로 연례 평가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룰루레몬은 ‘C-’를 받았다. 물론 이 팩트만 언급한다면 룰루레몬은 억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기업도 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프라다와 살바도르 페라가모 같은 브랜드는 아예 최저점인 ‘F’를 받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은 H&M이이었지만 점수가 (고작) ‘B-’ 였을 뿐이다.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샤넬은 ‘D-’, 버버리는 ‘D’였고 이밖에 콜럼비아, 게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의류업체들도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룰루레몬은 ‘수많은 기업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외면하는 데 왜 자신들이 비난 리스트의 선두에 있어야 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이번 청원과 캠페인 등을 주도한 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룰루레몬이 공급망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다른 업체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룰루레몬은 가장 큰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며 웰빙, 지속가능성, 사람, 지구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전했다. 해당 업체가 쌓아온 이미지와 영향력 때문에 다른 기업들에 비해 더 빨리 행동에 옮길 수 있고 이는 업계의 모범이자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뜻이다.
지난 1월 말 기준,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600억달러로 나이키를 제외한 다른 어떤 북미 의류 제조업체보다 선두를 달리고 있다. 수많은 패션 기업 중에 소비자들의 청원과 언론의 조명을 받는 불편한 상황이 있지만, 동시에 이 움직임 자체는 룰루레몬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높은(?) 평가이기도 한,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교실에서 1등 학생 시범케이스로 벌주는 격이다.
연간 1000억벌 생산...74%는 바로 소각장행
의류업계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구문이다. 실제 옷들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또 버려진다. 일명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나오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인스타용으로 한 두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옷들이 많다는 얘기다. 영국 순환경제 연구기관인 엘렌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매해 생산되는 의류의 총 수는 약 1000억벌로 추정된다. 세계 인구가 2023년 말 기준 약 80억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가운데 약 73%가 팔리지 않고 그대로 버려지는데, 매 초당 트럭 한 대 분량(2.6t)의 옷이 소각·매립된다는 의미다.
BBC에 따르면 ▷면화 재배를 위해 세계 농지의 약 2.5%가 사용되고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합성 재료는 매년 3억4000만 배럴 이상의 오일이 필요하며 ▷염료 사용 등 4300만t(연간)의 화학물질이 투입된다. 면화 재배를 위해 필요한 살충제가 전세계 사용량의 24%를 차지하고 화학 합성소재 옷을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된다.
이 밖에도 많다. 무엇보다 엄청난 물이 사용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대략 1만 ℓ의 물이 사용된다. 500㎖ 생수병 2만개가 ‘청바지 한 개’를 위해 희생된다는 뜻이다. 티셔츠 한 벌에도 수 천개의 생수병이 필요하다.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 내전, 국경 분쟁 등이 발생해 왔다).
면화 재배를 위한 농지 조성부터 엄청난 물과 화학물질, 화석연료 사용 그리고 종국에는 버려지는 폐기물(포장도 뜯지 않은 옷들까지 포함)까지 말그대로 악순환의 전형이다. 유엔에 따르면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전체 탄소 배출량의 10%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항공(3%)과 해운(2%) 분야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해지자 몇 년 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일부 패션 업계의 각성 혹은 노력이 시작됐다. 신재생 에너지원 활용, 친환경 원단 개발, 저폐기 제조 공정 등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파인애플 수확 뒤 버려진 입을 모아 만든 식물성 가죽 ‘피나텍스’가 2014년 생산됐고, 2017년에는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데세르토(Desserto)’도 등장했다. 선인장에 섬유질이 많고 질기다는 특성에 착안했다. 옥수수 줄기 위에 버섯 균사체를 배양한 후 이를 압축한 ‘버섯 가죽’ 도 상용화되고 있다. 미국 뉴욕 소재 한 순환소재 스타트업은 “Waste is the new luxury (폐기물은 새로운 명품이다)”라는 슬로건으로 2022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새우 껍질(톰텍스, TômTex)을 원단으로 만든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멋진데, 비싸다)
탄소 배출, 숨은 그림 찾기
기업들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여러 번 의심해야 한다. 본인들에게 편한, 유리한 팩트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다르다. ‘사실’은 그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앞서 룰루레몬은 자사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설을 100%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왔다고 밝혔지만 이는 일부 사실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개념이 바로 ‘스콥(Scope)’이다. ‘온실가스 배출 측정’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Scope1은 기업이 생산 단계에서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하고, Scope2는 기업이 외부에서 구매한 전력 등의 에너지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간접 배출’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측정하기도 관리하기도 어려운 배출은 주로 Scope3 범주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기업 활동과 연관된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기타 간접 배출’ 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 본사에서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한다고 했을 때 이 컴퓨터가 어디선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배달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혹은 본사의 한 직원이 출장을 갈 때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행기를 탄다면 역시 온실가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사 건물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기업이라면 그 재하청 기업까지 100% 친환경으로 재구조화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Scope3’을 언급하길 꺼려하는 이유다.
환경부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의류 폐기물은 11만8386t에 이른다. 한국은 매년 30만t 이상의 중고 의류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전 세계 5위). 룰루레몬 이전에 우리 내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의류재고를 버리지 못하도록 막는 법안을 마련중인 유럽연합, 폐기 금지는 물론 수선비까지 지원하는 프랑스 등을 참고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만으로 패션 업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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