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한국인이 유독 사랑한 수정방, 그리고 촉나라
"드넓은 영토, 오래된 역사, 14억 명의 인구와 56갈래의 민족을 가진 중국은 각 지방, 도시, 마을마다 고유의 술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그 술은 현지의 역사, 사회, 문화, 예술 등에서 시작됐고 서로 어울리면서 발전해 왔다. 또한 현지와 관련 있는 걸출한 인물에 모티브를 두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 착안해서 대륙 곳곳의 사정과 그 속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필자가 현지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중국 역사상 쓰촨(四川)성에서 흥성한 국가 중 '촉(蜀)'으로 불린 나라는 둘이었다. 하나는 3000여 년 전에 잠총이 세운 촉이고, 다른 하나는 221년 유비가 세운 '촉한(蜀漢)'이다.
오늘날 전자를 '고촉(古蜀)'이라고 부른다. 고촉은 광한(廣漢)시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그 흔적이 1934년에 처음 발견되어 지금까지 발굴 중인 싼싱두이(三星堆)다.
싼싱두이의 유물은 황허(黃河) 문명과는 전혀 다른 고촉의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쏟아져 나온 청동 면구와 인두는 한족 얼굴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쓰촨이 중국문명과 완전히 결합하게 된 시기는 기원전 316년 진나라의 대군이 고촉을 멸망시킨 이후다. 훗날 진시황에 의해 첫 통일제국으로 발돋움하는 진은 쓰촨에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기원전 3세기 중반 태수 이빙(李泳)이 건설했던 두장옌(都江堰)이다. 두장옌은 청두(成都) 서쪽에 흐르던 민강(岷江)을 막아서 여러 갈래로 흐르게 한 수리관개시설이다.
중국 고대 수리사업의 효시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두장옌에서 갈라져 나온 물줄기는 거대한 청두평야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기름진 땅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물산이 나오자, 중국인들은 쓰촨을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고 불렀다.
본래 사마천이 《사기》에서 시안(西安) 일대의 관중평야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두장옌이 타이틀을 빼앗아 와서 쓰촨에 안겨다 주었다. 고촉 말기의 수도였던 청두는 기원전부터 이름 지어진 오랜 도시다.
3세기 혼란기 삼고초려 끝에 출사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삼분책을 내놓았던 것은 천부지국인 쓰촨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비가 세운 촉한은 가장 작은 영토를 가졌지만 43년 동안 번성했다.
제갈량은 유비와 유선 두 임금을 모시는 동안 천하통일의 대업을 못 이루었다. 하지만 그의 충심과 기개는 지금도 청두의 무후사(武侯祠)에 남아있다.
본래 제갈량은 북벌 중 죽고 시신은 산시(陝西)성 몐(勉)현 딩준산(定軍山)에 묻혔다. 그러자 유선이 청두 외곽에 제갈량 사당을 조성했는데, 이를 5세기 초에 시내로 옮겨왔다.
그 뒤 명대에 유비의 묘인 한소열묘(漢昭烈廟)와 합치면서 지금처럼 성역화했다. 세월이 흘러 후대인들은 유비보다 제갈량을 높이 더 평가하면서 이곳도 한소열묘보다 무후사로 불렸다.
759년 안사의 난을 피해서 두보(杜甫)가 청두로 이주했다. 개울가 옆에 초당을 지어 살았다.
세 번 다시 찾게 한 번거로움은 천하를 위한 계책으로(三顧頻煩天下計)
두 임금을 섬겨 나라를 구하려던 노신의 마음으로 나타났네.(兩朝開濟老臣心)
전쟁에 나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어(出師未捷身先死)
후세의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을 옷깃에 적시게 하네.(長使英雄淚滿襟)
무후사에서 동남쪽으로 걸어가면 두장옌에서 갈려 나온 진강(錦江)이 흐른다. 그리고 진강 변에는 오늘날 한국 술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 술인 수정방(水井坊)의 유적지가 있다.
수정방을 생산하는 업체의 본래 이름은 취안싱(全興)주업이었다. 취안싱은 1993년 쓰촨제약이 청두술공장(酒廠)을 통합한 국유기업이었다.
청두술공장은 1951년에 설립된 주류업체로, '취안싱대곡(大曲)'이라는 술을 생산했다. 취안싱대곡은 1786년에 문을 연 취안싱양조장에서 빚었다. 1949년 이후 국영화된 회사가 청두술공장이다.
취안싱대곡은 1963년 중국 전역의 술이 자웅을 겨루던 전국술평가대회(評酒會) 2회 대회에서 8대 명주로 선정됐다. 1984년과 1988년의 4회와 5회 술품평회에서도 국가명주로 뽑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다른 도시의 명주가 개선된 도로 사정과 물류 환경을 발판으로 청두시장을 잠식했다. 홈그라운드에서도 점유율이 떨어지자, 청두시정부는 청두술공장을 취안싱으로 통합해서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시장을 잠식당하는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청두인만 마시는 서민 술로 고정된 브랜드 이미지가 문제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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