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박민영 "'내 남편과 결혼해줘', 무너진 날 일으켜줬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로서 불미스러운 일,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를 강행했어요.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닙니다. 실수를 정확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진심을 많은 분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민영은 본격 인터뷰에 앞서 사과로 말문을 열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쓰듯 전하는 목소리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오랜 마음고생도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박민영은 지난 2022년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A씨와 교제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당시 열애설 보도 이틀 만에 결별 소식을 전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계속되는 구설 속 박민영이 대중 앞에 나설 용기를 냈다. 공백이 길어질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약 1년 만에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로 복귀한 것이다. 위기 속 정면돌파를 택한 박민영의 행보는 1회차 인생의 아픔을 딛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강지원과 닮아있었다. 다시 웃을 기회를 잡은 강지원처럼, 박민영 역시 '내 남편과 결혼해줘'로 배우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주변에서 '멘탈이 강하다'고 하시는데 사실 저도 똑같아요. 그때 많이 부서졌고 사람에 대한 의심과 경계심이 생겼고 지금도 자꾸 깜짝 깜짝 놀라요. 그렇게 정신이 무너진 와중에도 유일하게 붙들고 있던 게 이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여력이 안 돼서 거절하려고 미팅에 나갔는데 감독님, 작가님들이 '이건 박민영 아니면 안 된다', '대박민영'이라고 하시면서 용기를 주셨어요.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실망시키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 몸과 정신을 모두 '올인'했어요. 보통 작품 끝나면 시원섭섭한데 이번엔 처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부터 들 정도로요. 촬영 초반엔 좀 힘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전 연기할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바닥을 한번 치고 나니까 다시 신인이 된 느낌이라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제 첫 작품 같기도 해요.(웃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경험하며 시궁창 같은 운명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들의 완벽한 호연과 파격적인 전개 덕에 4주 연속 TV OTT 화제성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TV쇼 부문 글로벌 일간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제 눈엔 재밌는데 시청자분들도 똑같이 느낄지 걱정이 컸어요. 근데 1회 시청률이 굉장히 잘 나왔더라고요. 배우로서 최고의 칭찬을 들은 기분이었죠. 1회는 강지원의 내레이션과 플래시백이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스토리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에 안도했어요. 근데도 마음을 다 놓진 못했어요. 드라마가 방송되는 내내 행복하게 웃어본 적도 없고요. 끝까지 잘하고 싶고 민폐 끼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박민영이 연기한 강지원은 무능하고 냉정한 남편, 짜증을 부르는 시댁, 고된 회사생활을 견디다 암 진단을 받는 인물이다. 심지어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수민(송하윤)이 자신의 남편 민환(이이경)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2회차 인생의 기회를 얻은 뒤 직접 운명 개척에 나선다.
"제가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잘 살다가 벽을 만나서 한 번 무너졌잖아요. 그래서 얻게 된 감정의 폭이 있어요. 이 작품을 제게 맡겨주신 분들은 그걸 보신 것 같아요. 저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걸음걸이 하나까지 계산해서 열심히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1회차 인생의 강지원은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그렸고, 2회차부터 서서히 흑화하는 과정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캐릭터에 많이 접어놓는 작업을 했어요. '나혼자 2회차 인생'이라는 걸 늘 기억하면서 연기했더니 오히려 절제된 감정선이 나온 것 같아요. 2회차에서는 저도 통쾌했던 장면이 많은데요, 막 엎어 치는 것보다 미세한 액션이 더 통쾌했어요. 예를 들면 과장님이 예전과 똑같은 밀키트 보고서라는 걸 발견 못 하고 통과시킬 때,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운명과 복수라는 큰 타이틀을 중심에 둔 이야기 자체는 시원하고 명료했지만, 강지원은 분명 연기하기 간단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박민영은 처절했던 1회차 인생부터 제대로 각성한 2회차 인생까지 감정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회귀라는 판타지 요소에도 설득력을 입혔다. 특유의 디테일한 연기와 극을 이끄는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빛났다는 평가다. 탄탄한 연기 덕에 수민과의 대립 역시 쫄깃했고 복수의 쾌감도 더 컸다.
"(송하윤과) 첫 장면은 병원이었는데 눈을 보면서 많은 게 느껴졌어요. 저희가 실제로 동갑이고 데뷔 연도도 비슷하고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서로 잘 아는 상태에서 만나서 그런지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지원이랑 수민이로 만났어요. '너도 진짜 잘 버텼구나' 하는 게 서로의 눈동자에 담겨 있어서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완벽한 호흡을 맞출 수 있었죠. 절친에서 적이 되기까지 세세한 묘사가 많이 필요했는데요, 어찌 보면 이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끼리라 가능한 장면들도 많았어요. (송)하윤 씨는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수민이 리허설을 보고 저도 영감을 받아서 톤을 조절하곤 했어요. 다행히 '넌 나보다 예쁘면 안 돼!' 하는 수민이 같은 친구는 아직 없네요.(웃음)"
'내 남편과 결혼해줘'로 흥행 불패 타이틀을 보란듯이 지켜낸 박민영은 오는 3월 동료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포상휴가를 떠난다. 대규모 아시아 팬미팅도 예정돼 있다. 그는 "빨리 팬분들 만나서 나 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찍으면서 제작진, 소속사 식구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에게 감사했는데요, 어찌 됐든 결국 혼자만의 싸움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어요. 아마 주변에 말은 못 해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밤에 눈감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렇게 삶에 지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흥미로운 이야기, 응원을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내가 강지원이다', '넌 일어날 수 있어, 잘할거야'라고 되뇐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다시 일어날 힘을 준 작품으로 남길 바라요. 저도 팬미팅으로 열심히 에너지 받아서 또 좋은 작품으로 돌아올게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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