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된 불평등'과 경사노위 역할 [한국의 창(窓)]
불평등이 다시 불평등을 낳는 사회
소외의 고리를 끊는 대안마련 시급
오랜만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왔다. 그렇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던 사람들은 물가 안정세를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15% 정도 오른 농산물을 비롯해 식료품 가격이 전년 대비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먹거리 물가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주지만 저소득층에 더 치명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이중화를 심화시키는 상황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가운데 최저임금은 올해 24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저소득층을 떠받치는 직접적 방법은 임금 인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년 경험하고 있다시피 최저임금 몇백 원 올리는 것은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불황기엔 말할 것도 없다.
최저임금의 영향은 단지 그 금액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임금’만으로 살아야 하는, 즉 기업이 제공하는 부가적 복지 혜택과 사회보험 보장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몇백 원의 영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시간제 노동자’다. 이들을 이례적인 상황에 놓인 ‘알바생’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7%, 여성 노동자의 27%에 해당하며 지난 10년간 늘어난 임금 노동자 중 60% 정도가 시간제다. 이렇듯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제 노동자의 2023년 월평균 임금은 107만 원으로 전체 평균의 35%에 불과하다.
비단 임금만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노동복지정책에 의미 있는 발전이 있었지만, 시간제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시간제 노동자 중 국민연금 직장가입자는 20.6%, 고용보험 가입자는 33.6%에 불과하다. 근로복지나 교육훈련의 수혜로부터도 대체로 벗어나 있다. 시간제 노동자 중 유급 휴가를 쓴 경우는 17.8%, 전환기 경제에 강조되고 있는 교육·훈련을 경험한 비율 역시 26%에 불과하다.
사업체 규모 간 격차도 이중구조의 핵심 문제다. 시간제 노동자도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돼 있다.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놓고 일었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논란은 실제 위험이 집중되는 영역에 정책이 미치기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법을 비롯해 근로기준법의 많은 조항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초저출산 대책으로 ‘일·가족 양립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시간제 노동자, 소규모 사업체 노동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유연근무제, 육아휴직 등 제도들은 대체로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 정도는 돼야 무난하게 사용 가능한 형태다. 낮은 소득계층에 속할수록 돌봄서비스 구매나 공공돌봄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고, 돌봄 부담이 커진다. 일·가족 양립 지원 정책들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됨에 따라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출산에도 계층 간 차등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결과들이다.
이중노동시장의 구조 속에서 국가와 기업 복지가 고도화될수록 근로조건의 격차가 더 심해지고, 개인들의 삶의 선택에도 계층적 격차를 만들어내는 역설적 상황들이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이중의 이중화’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는 ‘통합된 불평등’이라는 개념을 통해 불평등이 단일 범주가 아니라 여러 불평등 원천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악화되고 지속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희소한 기술 역량에 대한 차별적 보상이 심화되면서 직종 간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이 현상이 핵심 역량만을 조직 내부에 보유하려는 대기업의 정책과 결부되면서 ‘고임금 직종과 고임금 직장 간 결합’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봐도 낯설지 않은 설명이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재구성됐다고 한다. 오랜 공전 끝에 어렵사리 만들어진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정부와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이중의 이중화, 통합된 불평등의 구조를 직시하고 머리를 맞댈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다.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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