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싶을 때 복수하는 푸틴… 망명한 군인도 ‘의문의 죽음’ [뉴스+]

김희원 2024. 2. 2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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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처음 우크라 망명한 러군 조종사
‘영웅’ 됐지만…6개월 만에 스페인서 살해
푸틴 반대한 인물들…독살·총격·추락사 등
“푸틴은 ‘복수의 사도’…안하면 놀라운 일”

지난해 우크라이나로 망명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20대 러시아군 조종사가 스페인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전쟁 발발 후 처음 망명한 군인으로 다른 군인들에게도 망명을 촉구하며 러시아 정부를 자극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반란을 일으켰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에 이어 망명 군인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이들이 줄줄이 의문을 죽음을 맞으면서 푸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23년 8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군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 가디언 등 외신들은 19일(현지시간) 지난해 비밀작전을 끝에 우크라이나로 망명했던 러시아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29)가 숨졌다고 스페인 언론과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즈미노프는 지난 13일 스페인 남부 코스타블랑카의 한 마을에서 12발의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그 근처에서는 불에 탄 자동차도 있었다. 

스페인 경찰은 당초 이번 총격 사건이 갱단과 관련 있다고 여겨 수사하던 중 그가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 공군 조종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쿠즈미노프는 군에서 쌍발엔진 헬리콥터를 조종해 전력과 장비를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투기 부품을 운반하던 중 신호발생기를 끄고 헬기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몰아 망명했다. 그 과정에서 함께 탑승했던 동료 조종사 두 명은 숨졌다.

쿠즈미노프의 망명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수개월간 우크라이나군정보국(HUR)과 접촉 끝에 성공한 작전이었다.

그는 망명 후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왜 전쟁을 해야하는지 의문이었고, 전쟁범죄에 동참할 수 없어 텔레그램을 통해 HUR에 연락했다”면서 “다른 러시아 군인들도 망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50만달러(약 6억6200만원)를 받기로 했으며 가족들도 이미 우크라이나로 거처를 옮겼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언론에 따르면 쿠즈미노프는 스페인 이주를 결정했으며 여자친구를 초대했다. 그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여자친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 망명한 군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의심의 화살은 자연스레 러시아 정부로 향하고 있다. 가디언은 “러시아 정부는 푸틴에 맞선 인물들을 대상으로 유럽 전역에서 살인을 저질러 왔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 16일 푸틴의 최대 정적인 나발니가 감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두 번의 독살 위기를 넘기고 극단주의 활동 등 혐의로 수감돼 있던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러시아 당국은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의 가족에게 시신 인도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에는 푸틴의 최측근이었으나 전쟁 중 반기를 들었던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푸틴의 용병집단인 ‘바그너그룹’ 수장이었던 프리고진은 지난해 6월 푸틴에게 반발해 무장한 채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러나 곧 진격을 멈췄고 푸틴과 합의하면서 반란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두 달 뒤인 8월 프리고진을 태운 전용기가 이륙 30분도 되지 않아 추락하면서 그도 사망했다. 서방 언론은 해당 비행기가 격추됐을 가능성 등을 보도했지만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업체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은 2022년 병원에서 추락사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합병 시도를 반대했던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는 2015년 모스크파 도심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지난 2019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마가노프 루크오일 회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찍은 사진. AFP연합뉴스
푸틴 정권의 체첸 탄압을 비판한 언론인 안나 폴리코브스카야는 2006년 모스크바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고, 같은 해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도 영국 런던의 호텔에서 독이 든 홍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이 러시아 정부와 관련돼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푸틴을 비판한 인물들이 줄줄이 석연찮은 죽임을 당한 것을 두고 서방 정보당국은 푸틴이 직접 연관됐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프리고진 사망 한 달 전 푸틴의 복수를 확신했던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푸틴은 뜨거운 상황이 마무리돼 차갑게 식었을 때 복수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며 “내 경험상 푸틴은 복수의 사도이기 때문에 만일 프리고진이 복수 당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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