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일본 기업 공탁금 수령…사실상 ‘첫 배상’
63명 승소에도 일본 기업들 이행 않고 ‘3자 변제’ 지지부진
일본 기업이 한국 법원에 공탁한 돈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됐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은 많지만 일본 기업이 직접 낸 돈을 배상금 명목으로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일제강점기 히타치조센에 끌려가 일했던 이모씨 측은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히타치조센 측이 담보 성격으로 공탁한 6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이씨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히타치조센은 5000만원과 지연손해금 등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히타치조센은 1심 패소 뒤 ‘강제집행을 멈춰달라’면서 담보로 6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이씨 측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 법원이 보관 중인 공탁금을 받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히타치조센이 공탁금을 되찾아가지 못하도록 서울중앙지법에서 압류 추심을 인정받았고, 서울고법에서 담보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담보 취소 결정문이 히타치조센에 송달됨에 따라 이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공탁금 출급(물건 따위를 내어 줌) 신청’을 인정받았다.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법원에 낸 돈이 피해자 배상금으로 쓰인 것은 처음이다.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둔 일본 강제동원 기업은 히타치조센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른 기업이 추가로 공탁금을 걸지 않는 한 이번이 유일한 사례로 남을 공산이 크다.
이씨 측을 대리한 이민 변호사(법률사무소 헤아림)는 “일부에 대한 사실상 배상이 일본 기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공탁금에서 변제되는 돈을 제외한 나머지 배상금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제안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개별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총 63건이다. 2018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가 처음 확정된 이후 12건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내려졌는데, 모두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 기준 63명이 승소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말부터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잇따라 확정하고 있어 승소한 피해자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들은 피해 변제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 기업의 항고·재항고로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의 손해배상 채권과 관련한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2건·특허권 2건, 이춘식 할아버지의 일본제철 소유 PNR 주식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매각) 재항고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선고를 미루는 사이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 이 방식은 피해자와 유족 반대로 이행 절차의 첫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법원에 배상액 공탁을 신청했으나 1심 법원에서 잇따라 ‘불수리’ 결정이 내려졌다. 법원은 정부의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현재 재단이 확보한 재원도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배상금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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