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혈세 샌다”던 정부, 산재 감사서 근거 못 찾았다

김지환 기자 2024. 2. 20. 21: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동부, 감사서 산재보험 부정수급 약 113억·486건 적발
업무상 질병 ‘추정의 원칙’ 등 개선 추진에 노동계 반발도

‘산재 카르텔 근절’을 내세우며 감사를 벌여온 고용노동부가 113억원가량의 산재보험 부정수급을 적발하고 산재보험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여론몰이에 나섰지만 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노동계는 부정수급 사례, 산재브로커 개입 등의 일부 사례를 근거로 산재 인정을 어렵게 하는 방향의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 발표 브리핑을 열고 “노무법인 등을 매개로 한 산재 카르텔 의심 정황, 각종 부정 사례 등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이 산재 카르텔 의혹을 제기하자 같은 해 11월부터 2개월간 특정감사를 벌였다. 지난달에는 2주간 노무법인 점검도 진행했다.

노동부는 ‘노무법인, 병원, 환자 간 담합’을 카르텔로 규정하고 위법 정황을 공개했다. 대표적 사례는 노무법인이 소음성 난청 산재 승인을 위해 산재 환자에게 특정병원을 소개하고 진단 비용 등 편의 제공 후 과도한 수임료(산재보상금의 최대 30%)를 받은 것이다. 산재 업무를 변호사·노무사가 하지 않고 권한이 없는 사무장이 처리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 장관은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곳에 대해 처음으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국정감사 때 제기된 근로복지공단, 공단 직영병원, 환자 간 담합 의혹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

산재보험 부정수급 사례도 확인됐다. 신고를 받거나 자체적으로 파악한 883건을 살펴본 결과 486건(55%)의 부정수급이 적발됐다. 적발액은 약 113억원이다.

노동부는 부정수급, 브로커 개입 등을 근거로 제도 개선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번 감사에서 부정 사례가 적발되지 않은 업무상 질병 ‘추정의 원칙’을 손질할 계획이다. 추정의 원칙은 뇌혈관·근골격계 질환 등 특정 질병의 경우 업무와 질병 간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일부 현장조사 절차를 생략하는 것으로, 산재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해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됐다. 이 장관은 “추정의 원칙은 법적 위임의 정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운영돼 현장의 혼란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추정의 원칙 적용 건수가 매우 낮고, 처리기간도 100일을 웃도는 만큼 되레 실효성을 높여야 하는데 노동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노동부는 급증하고 있는 소음성 난청 산재 신청도 문제삼았다. 이 장관은 “소음성 난청은 판례 등에 따라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으며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은 소멸시효 기산일이 소음작업장을 떠난 날에서 진단일로 변경됐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계는 근로복지공단이 소음성 난청 산재 불승인 뒤 재판에서 패소(공단의 소송 취하 포함)한 비율이 약 70%에 이르는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가 전체 요양환자의 48% 수준이라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이 장관은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어 사실상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개별 노동자의 조건, 질병별 특성이 다양한데 표준요양기간을 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이번 감사는 ‘산재 카르텔로 조 단위 혈세가 샌다’는 대통령실·여당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감사 이후 산재 승인 문턱이 별다른 이유 없이 높아졌다는 점을 체감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