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다른 ‘이종교배’, 공천권 ‘면역거부’…낙-준 연대 파국 전말

임재우 기자 2024. 2. 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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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 이낙연 공동대표(오른쪽)와 김종민 최고위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로운미래 당사에서 이준석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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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 빅텐트’를 내걸고 야심차게 출범했던 이낙연·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의 개혁신당이 통합 선언 불과 11일 만인 20일 감정 섞인 공방으로 막을 내렸다. 가치와 노선이 다른 세력이 4·10 총선을 겨냥해 서둘러 물리적 결합에 나서면서 ‘시너지 효과’는커녕 각자의 기존 지지층 이탈과 저조한 지지율 등의 후과가 따랐고, 주도권 다툼 끝에 결국 ‘공천권’ 앞에서 파국을 맞게 됐다.

두 공동대표는 지난해 말 각자 신당 창당을 준비하면서부터 ‘밀고 당기기’를 거듭해 왔다. 대체로 이낙연 대표가 이준석 대표를 당기고,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대표를 밀어내는 모양새였지만 ‘낙-준 연대’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준석 대표(개혁신당)가 양향자 대표(한국의희망)와 먼저 합당한 뒤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 조응천·이원욱 의원의 원칙과상식,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선택이 진행한 통합 논의는 진통이 거듭됐지만,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전격적으로 통합을 선언하며 관심과 함께 의문을 자아냈다.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이낙연 대표의 ‘양보’라는 게 새로운미래 쪽 설명이다. 이준석 대표는 통합 신당의 당명을 자신의 개혁신당으로 유지하고, 법적 대표도 자신이 맡겠다고 요구했다. 이어진 주요 당직자 인선도 양향자 원내대표, 김철근 사무총장, 허은아 수석대변인 등 기존 개혁신당 쪽 인사들로 채웠다. 이낙연 대표가 20일 기자회견에서 “신당 통합은 정치개혁의 기반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크게 양보하며 통합을 서둘렀다”고 한 것은 이런 대목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회견에서 김종민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가) 지지자들이 떠나가니까 얼굴이 많이 알려진 기존 개혁신당 사람들이 포진돼야 무마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 쪽은, 이낙연 대표와 현역 의원 4명(김종민·조응천·이원욱·양향자) 등 주요 인사 다수가 민주당 출신이어서 기존 지지층의 반발이 심하다는 논리도 댄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열린 첫 통합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낙연 대표가 개혁신당이 기존에 사용하던 ‘개혁오렌지’에 새로운미래가 쓰던 ‘남색’을 섞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기존의 개혁신당 색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낙연 대표 쪽이 초기 기 싸움부터 밀린 셈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새로운미래와 합당 철회를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가치·노선이 다른 세력들이 ‘속성 통합’한 부작용도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의 입당 문제를 계기로 조기에 표출됐다. 지난 13일 배 전 부대표한테 ‘새로운미래에 입당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이준석 대표는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발이자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석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야만적”이라며 반대해 왔는데,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의 아내인 배 전 부대표가 개혁신당의 한 축인 새로운미래에 입당하겠다고 하자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잖아도 새로운선택 쪽 류호정 전 의원의 합류 등으로 기존 지지층이 이탈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이 대표를 더욱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페이스북에 “법적 대표인 제 권한 내에서 (배 전 부대표한테) 공직후보자 추천이나 당직 임명 등의 가능성은 없다”며 ‘선전포고’를 한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대표 쪽을 더욱 압박했다. △자신에게 총선 홍보·정책 결정권 부여 △배 전 부대표의 당직·공천 배제 △당 지도부 전원 지역구 출마에 동의하라고 요구했다는 게 새로운미래 쪽 주장이다. 이어 이준석 대표는 16일로 예정됐던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17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다. ‘세 가지 요구에 긍정적 답변을 주지 않으면 통합을 재검토하겠다’는 이준석 대표의 태도에 당 안팎에선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원욱·조응천 의원이 ‘19일 최고위에서 표결에 부치자’고 설득해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그에게 총선 지휘권을 준 표결 뒤 하루 만에 두 공동대표 쪽은 갈라서게 됐다. 특히 이낙연 대표 쪽은 이준석 대표가 총선 홍보·정책 결정권을 토대로 ‘김종인 공천관리위원장’을 밀어붙여 공천권까지 빼앗는 ‘큰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한다. 신경민 새로운미래 최고위원은 20일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제의 본질은 캠페인·정책에 관련한 권한”이라며 “이건 모든 것을 포괄한다. 핵심은 공관위원장 선임이고, 결국 공천권”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종민 의원도 전날 같은 주장을 펴며 “(김종인 공관위원장 선임은) 이낙연 대표를 어떻게든 밀어내려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반면 이준석 대표는 20일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공관위원장 추진은) 이낙연 대표가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하고 ‘이준석 대표가 연락을 해주실 수 있겠냐’고 했다”고 반박했다. 또 “그 외에 자잘한 사실관계들이 모욕적이지만 굳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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