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 급한데 기약 없이 기다려”…환자도 보호자도 망연자실

강은·오동욱·고귀한 기자 2024. 2. 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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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선 암말기 위급상황에도 “의료진 부족, 대기를”
대형병원 ‘이송 불가’에 구급대원 “어디로 가라는 건가”
입·퇴원 일정 차질에 의료진과 실랑이…시민 불안 고조
병원 안에선…진료 대기로 붐비는 환자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 근무를 중단한 20일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운 20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나서는 김모씨(40) 부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김씨 부부는 중환자실에서 생후 8개월 된 아이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이가 식도폐쇄증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신생아 4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이 병은 식도와 위를 연결하는 수술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 김씨 부부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30분.

“저희가 없는 시간에 아이를 돌봐줄 분들은 전공의 선생님인데…. 오늘 계시냐 물었더니 안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 등으로 근무를 중단한 첫날 서울 주요 병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우려가 가득했다. 병원 곳곳에는 “의료진 부족으로 검사가 지연되고 있다”거나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글귀가 적힌 안내문이 걸렸다. 위급한 병환으로 응급실을 찾았거나 예정된 수술이 취소된 이들은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는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을 찾은 백관용씨(42)는 “화가 난다”고 했다. 초조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보던 백씨는 “장인어른이 직장암 말기라 항암치료 중인데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안내를 받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백씨는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진이 부족하다는데 국민 생명을 볼모로 뭐하는 짓인가. 의사면허를 다 박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목청을 높였다.

한 구급대원은 “전공의 파업 여파 때문인지 ‘빅5’ 병원은 물론이고 웬만한 대형병원은 ‘이송 불가’라고 뜬다”면서 “경증 환자는 이송을 자제하고 중증은 연락 먼저 하고 오라는데 대체 어디로 환자를 데려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환자와 의료진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내가 근육암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정성구씨(53)는 “전공의 부족으로 퇴원을 권유받았다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항의해 간신히 남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검사부터 수술까지 모든 걸 이 병원에서 했는데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라니 막막하지 않겠냐”면서 “다른 병원에서도 타 병원 수술 환자는 안 받겠다고 한다”고 했다.

전국 각지의 병원 안팎 상황도 비슷했다. 이날 오후 1시쯤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로비에서 만난 A씨(35)는 “오늘 진료를 받을 수 있기는 한 거냐”라며 “2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병원을 찾았다. 5년 넘게 정기적으로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A씨는 “평소 수납까지 1시간가량이면 됐는데 이날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에는 이날 오전부터 많은 환자가 몰려들어 로비 의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기다림에 지친 환자들은 바깥쪽 의자 손잡이에 한쪽 팔을 걸쳐 베고 눈을 감거나, 연신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 화순에서 왔다는 B씨(45)는 “아이를 혼자 놔둘 수 없어 데리고 왔는데 아이도 찡얼거리고 울음을 터뜨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의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이날 환자가 20시간이 넘도록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도 목격됐다. 시민 C씨는 “칠곡경북대병원에 갔다가 경북대병원 본원에서 혈액 관련 추가 검사를 받으라고 안내받았다”며 “어제 오후 3시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미칠 노릇”이라고 했다.

입원 환자들의 퇴원 사례도 속출했다. 경북대병원에서 만난 김모씨(40대)는 “수술받고 회복 중인 어머니에게 의료진이 없다며 퇴원해야 한다고 전해왔다”며 “어떻게 아픈 환자를 이렇게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강은·오동욱·고귀한·김현수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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