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글로벌픽]끝없는 의문사…푸틴 정적 잔혹사
수감 중이던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산책 후에 갑자기 숨졌습니다.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해 왔습니다. 푸틴 입장에서는 다음 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정적이 제거된 셈입니다.
그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망할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푸틴이 집권하는 동안 반대자 혹은 정적은 꾸준히 테러나 사고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불과 6개월 전에는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다 추락사 했습니다. 그는 사고 두 달 전 무장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2022년 9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업체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이 병원 6층 창문에서 떨어져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그 해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후 죽은 러시아 재벌은 열 명이 넘습니다.
2017년 3월에는 푸틴을 비판했던 러시아 정치인 데니스 보로넨코프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대낮에 총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2015년엔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가 크렘린궁에서 불과 몇 m 떨어진 다리 위에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비판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2006년 11월에는 홍차 독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희생자는 1998년 푸틴이 수장을 맡았던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부정부패를 폭로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입니다. FSB 요원 출신인 그는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후 푸틴 정권 비판 운동을 이어갔으나, 2006년 11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전 러시아 정보 요원 2명을 만나 홍차를 마신 뒤 3주 만에 사망했습니다. 부검 결과 그의 체내에선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이 발견됐고, 이후 수사에서 그가 마신 홍차 찻잔에서도 폴로늄이 발견됐습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질인 탓에 러시아 당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이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에 한동안 ‘푸틴의 홍차’는 ‘죽음’을 암시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였습니다. 최근 숨진 나발니도 2020년 공항에서 차를 먹고 모스크바행 국내선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 독일로 긴급 이송돼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푸틴을 비판하던 언론인도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홍차 사건이 발생한 그 해 10월 7일엔 체첸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와 부정부패를 파헤친 언론인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거주하던 아파트 건물 로비에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포브스의 러시아 편집장이었던 폴 클레브니코프는 2004년 모스크바에서 차를 타고 달리던 괴한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독재정권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는 중국에서는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 갑자기 실종되는 일이 부지기수 입니다. 재벌이나 톱스타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류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이 공항에서 암살 당하고, 최고 권력자였던 장성택이 죽임당하는 걸 보면 칼 끝은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굳이 숨기지 않고, 공개 처형 형태로 널리 알리기도 합니다. 이들이 얻고자 하는건 무엇일까요. 아마 국민의 침묵이었을 겁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회에서는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국회의원이, 대학교 졸업식장에는 R&D 예산 회복을 촉구하는 졸업생이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습니다. 물론 이들이 죽임이나 감금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침묵을 강요했다는 면에서 우리 사회가 퇴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걱정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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