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4살 아이 ‘새벽런’...암환자는 응급실서 밤새 대기했다

고유찬 기자 2024. 2.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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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이탈, 의료현장 파행
필수의료 핵심인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진료실 앞이 진료를 보러온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연합뉴스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 20일, 응급의료의 핵심인 서울 대형 병원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다. 다른 병원보다 하루 앞서(19일)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일부 외래 진료도 중단했다. 응급실 운영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윤모(35)씨는 이날 네 살 아이를 데리고 신촌세브란스병원 안과를 찾았다 발길을 돌렸다. 윤씨는 “아이가 눈을 다쳐 지난주에 수술을 받았는데 상황이 악화돼 진료를 꼭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기존 예약이 취소됐다는 문자를 병원에 도착하고서야 받았다”고 했다. 외래 진료는 교수·전문의가 주로 보지만, 전공의들이 빠져나가 늘어난 일을 이들이 맡으면서 외래 진료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병원 곳곳에는 ‘현재 의료원 전공의 사직 관련으로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된다.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대형 병원 접수 창구에는 새벽부터 환자들이 몰렸다. 심장 이식을 위해 외과 수술을 받은 A씨는 새벽 6시부터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나왔다. A씨의 아내 이모(60)씨는 “주치의가 오전 8시쯤 출근하는데 혹시나 못 만날까 봐 2시간 전부터 병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네 살 아이와 함께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이주찬(31)씨는 새벽에 대전에서 차를 몰고 왔다. 그는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평소에도 인공호흡기를 챙기고 다닐 정도”라며 “의료진이 없어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걱정돼 새벽부터 나왔다”고 했다.

일부 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족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엔 ‘과밀화로 진료가 지연되고 있어 중증 환자 우선으로 진료하고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이 세워졌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도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가 불가하니 인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라’는 공지가 내걸렸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변모(71)씨는 “친척 중 하나가 암 진단을 받고 어제 포항에서 급히 올라와 검사는 받았는데 치료가 밀려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김모(35)씨는 “이마가 찢어져 응급실을 찾았으나 경증으로 분류돼 5시간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발길을 돌렸다.

병원 측에서 수술·진료 일정을 줄이자 일부 병원에서는 입원 환자들이 대거 퇴원했다. 팽대부암 수술을 받고 지난 17일부터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이모(60)씨는 “지금까지 네 차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는데, 병동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거식증 진단을 받고 지난주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윤모(29)씨는 “담당 전공의가 그만두는 바람에 병원으로부터 퇴원을 권유받았다”며 “2주 동안의 입원 계획을 취소하고 퇴원한 뒤 외래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노모를 모시고 퇴원 수속을 밟고 있던 박모(51)씨는 “파업 때문에 정상적 진료가 힘들어 퇴원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입원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지만 막막하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현장 이탈이 장기화될 경우 ‘의료 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특히 응급의료센터는 전공의 업무 공백을 교수·전문의가 채우고 있어 피로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 대형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근무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며 “진료 시간이 점점 늦어져 환자들의 대기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의 부담도 크다.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염모(25)씨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간호사들이 채우고 있다”며 “환자들의 컴플레인 또한 간호사들로 향해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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