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북·일, 북·미 그리고 한국

김유진 기자 2024. 2.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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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일본과의 대화 의향을 시사하자 미국 정부는 ‘어떤 종류의 관여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공들인 한·미·일 3국 대북 공조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원론적인 지지에 가까웠다.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한·미와 대화 생각이 없다는 북한이 일본에는 열려 있다고 한 것은 다분히 3자 간 틈을 벌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선 일말의 경계심마저 묻어났다. 외교부는 북·일 접촉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김여정 담화가 전날 한·쿠바 수교 발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크다는 인식도 내비쳤다.

북·일 정상이 마주 앉기까지는 걸림돌이 상당히 많다. 납치 문제와 북한 핵·미사일 해법에서 양측의 간극은 매우 크다. 일본 입장에서도 대북 제재와 북·러 군사협력이라는 국제안보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상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북·일 대화 국면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 속에서 ‘한국 패싱’이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부는 일본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적 양보로 한·일이 정상급 대화를 이어가고 있고 3국 채널도 수시로 가동되고 있으니 이전보다는 소통이 원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협상과 대북 접촉 경험이 풍부한 복수의 외교소식통은 “아무리 관계가 가까운 국가라도 다 공유하다가는 될 일도 그르친다는 게 외교 접촉의 이치”라고 말했다. 남한을 ‘제1의 적대국가’로 규정한 북한이 일본에 남측에는 진행 상황을 발설하지 말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도 쿠바의 비밀 유지 요청을 수용해 수교 발표 12시간 전에야 미국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물론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당장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지는 물꼬를 틀 가능성은 낮다. 조 바이든 정부의 신경은 온통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쏠려 있다. 그러나 다수의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을 앞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상황은 급변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트럼프의 미국’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일부 핵 폐기 또는 동결을 대가로 한 ‘직거래’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과도한 걱정을 하는 걸까. 북핵 위협을 이유로 반격능력 보유에 매달린 일본조차 물밑에서는 대북 외교를 모색 중이다. 지지율이 바닥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국내정치적 셈법이 작용했겠지만 어쨌든 일본은 다각도 접근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힘과 억제력을 통한 평화’ ‘한·미·일 공조’만 부르짖고 있다. ‘담대한 구상’은 관료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혔고,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이뤄내기 위한 한국의 포괄적 대북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중국과의 관계 강화로 몸값을 키운 북한이 한국은 빼고 일본, 미국하고만 담판을 벌이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일축할 수 있나. 정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큼은 한반도 안보 관련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 대응 계획을 마련하는 임무를 다하고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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