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에 입 연 한동훈 … 尹정부 '여성부 폐지'는?

한예섭 기자 2024. 2. 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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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안전엔 성별 없다"면서도…"여성 더 배려 받아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흉앙범죄 예방·처벌 강화 공약을 내걸며 스토킹 범죄,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 대표적인 여성폭력 범죄들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심리를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안전문제는 성별로 나눌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이번 공약의 취지가 "여성을 더 배려하자는 건 맞다"고 밝히며 과거 이준석 전 대표 시절 국민의힘의 '반(反)여성' 기조와는 다소 간의 거리를 뒀다. 다만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 및 여성폭력 관련 예산 삭감 등으로 비판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반여성 기조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 위원장은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을 찾아 광진구 CCTV 관제센터에서 현장간담회를 열고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공약을 발표했다. △흉악범죄 예방과 처벌 강화 △사이버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등의 내용이 담긴 해당 공약은 당초 '여성이 안전한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공지됐으나, 이날 오전 돌연 '여성'이 아닌 '시민'으로 단어가 바뀌어 재공지됐다. 한 위원장은 이날 출근길 기자회견에서 해당 공약 제목에 '여성' 단어가 빠진 사유를 두고 "안전문제는 성별로 나눌 문제는 아니"라며 "우리 모두 안전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 문건 등에서도 '성평등', '젠더', '여성' 등 단어가 삭제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2022년 여성부가 주관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 공청회에선 그간 양성평등 기본계획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돼온 단어 '성평등'이 '양성평등'으로, '여성폭력'과 '젠더폭력' 등은 '폭력'으로 대체됐는데, 여성계는 정부가 성차별 및 여성폭력 문제의 핵심이 '구조적 차별'이라는 점을 부정하고 있다는 취지로 이를 비판해왔다. (☞ 관련기사 : 여성부 신년 업무추진계획 살펴보니 '젠더', '성평등' 사라졌다)

다만 한 위원장은 이번 공약의 취지를 두고 "취지는 여성을 더 배려하자는 건 맞다"고 단서를 달았다. 성폭력, 스토킹 범죄 등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여성폭력범죄가 횡행한 가운데 범죄피해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심리를 일부 인정한 모양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국민의힘 대표가 과거 "(여성이 밤길을)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등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정책적 접근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것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다.

공약의 내용을 살펴봐도 여성 대상 폭력범죄에 대한 '정책적 인식'이 일부 엿보였다. 한 위원장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안심 주소' 도입 추진을 공약하며 "스토킹, 가정폭력, 성폭력, 교제폭력 등의 피해자들이 결국 그 범죄자가 처벌받거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불안감에 떠는 경우가 많다"며 "보복범죄 등 2차 피해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해당 범죄들을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라 지칭하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벌해서 감형도 제한하는 방식을 채택하겠다"고도 했다. 대표적인 여성폭력 범죄로 꼽혀온 이 같은 범죄들을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로 인식하고 대응한다는 방침은 여성·아동 등 범죄취약계층의 사회적 약자성을 고려한 것으로, 결국 범죄의 '구조성'을 일부 인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공약엔 이외에도 △주거침입 동작 감지 센서 설치 지원 △안심 물품 세트 지원 및 안심 무인 택배함 설치 확대 추진 △노후화된 CCTV 교체 및 귀갓길 동행벨 설치·운영 등이 '1인 가구를 위한 안전한 거주 환경 조성' 정책으로 담겼다. 법률적 공약으로는 △고위험성범죄자 거주지 제한(한국형 제시카법) △범죄피해자 진술권 보장 및 기록 열람권 강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다각적 추진 등이 소개됐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선 현재 아동과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여성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시민안전'을 주제로 내건 이번 공약들은 대부분의 내용이 치안환경 개선이나 가해자 개인에 대한 엄벌주의 적용에 치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8월 신림 등산로 여성 살해사건 당시에도 당정은 자율방범대 활성화 및 CCTV 확충 등을 골자로 한 '범죄발생 억제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성계에선 "일부 특이한 '위험군'을 관리하겠다는 방식의 대책은 여성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전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 관련기사 : 신림 '페미사이드'에도 여성 밤거리가 안전? 어디에도 '젠더'가 없다) 젠더 관점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물리적 수준의 치안환경 개선, 가해자 개인에 대한 엄벌 적용만으론 젠더폭력의 근본 원인인 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또 시민사회에선 '강력한 전담부처를 통한 성평등 정책의 지속적인 병행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지만, '여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지 않은 현 정부는 지난해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공개된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등 성평등(양성평등) 부문 예산을 크게 삭감하는 등 이른바 반여성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이후 젠더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내보인 적은 없다. 다만 그는 지난 1월 저출생 대책 공약 발표회에서 "고용부나 복지부 그리고 저희가 폐지를 공약했던 여성부의 아이돌봄 서비스 등의 정책을 신설될 인구부에서 인구를 유지하고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고민해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여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염두에 둔 말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자율방범대 초소 앞에서 열린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현장 공약 발표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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