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문턱 넘었더니 ‘노조’ 장벽이…삼성, 줄소송 시험대 올랐다
통상임금 소송 준비…사실상 첫 단체행동 돌입
임금 교섭도 난항…노동쟁의 조정 신청 잇달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삼성그룹이 노동조합과의 소송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초기업 노조)'가 지난 19일 정식 출범한 데 이어 초기업 노조에 속한 노조들이 통상임금 소송에 나설 태세이기 때문이다. 이를 필두로 계열사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이 줄을 이를 전망인 가운데 사법리스크에서 짐을 일부 덜어낸 삼성이 노조와의 법정 싸움과 마주했다는 관측이다.
통합노조 출범 이어 통상임금 소송 본격 추진
20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삼성 4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합친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초기업 노조)'이 공식 출범했다. 그간 삼성 계열사 노조들은 연대 형식으로 협력한 사례는 있지만 통합 노조를 출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기업 노조에 참여한 곳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화재해상보험 리본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곳이다. 통합노조의 규모는 약 1만5800명 수준이다. 여기에 규약 변경을 마치고 오는 5월 삼성전기 존중노조(2100명)가 합류하면 총 1만7900명 수준으로 불어난다. 삼성 관계사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조(1만7000명)와 맞먹는 규모다.
이들 노조가 추구하는 방향은 삼성 근로자의 권익향상과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이다. 그간 사업지원 TF(태스크포스)라는 이름으로 각 계열사의 업황, 인력구조, 사업이익과 별개로 획일적으로 이뤄져 왔던 노사관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홍광흠 초기업 노조 총위원장(삼성화재 리본노조위원장)은 "삼성의 임금협상은 임금인상률에 계열사 실정이 반영되지 않고 가이드라인의 통제를 받아왔다"며 "공식적으로 공동 요구안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그룹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차별적으로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이 요구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사업지원 TF가 임금 교섭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 노조는 출범 첫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초기업 노조에 속한 삼성전자 DX 노조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통상임금 소송에 참여할 소송단 모집을 시작해서다. 이들은 명절 귀성여비와 개인연금 회사 지원분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줄 것으로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월부터 명절 귀성여비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DX노조는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시효가 3년인 점을 고려해 이전 2년6개월치 수당 차액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고정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연장·휴일근로수당 산정에 기초로 활용된다. 귀성여비와 개인연금 지원분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직원들의 받는 수당은 늘어난다. DX노조는 2월 말까지 소송단을 모집한 뒤 3월 초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초기업 노조에 참여한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도 통상임금 소송에 나선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소송단 모집을 마쳤다. 통상임금 소송이 사실상 초기업 노조의 첫 단체행동인 셈이다.
살아나는 파업 불씨…거세지는 노조 요구에 삼성 대응은?
통상임금과 관련해 법원은 최근 노조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할 것을 요구한 현대제철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앞서 기아와 금호타이어의 노조도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통합노조의 출범과 함께 통상임금 소송은 삼성그룹 입장에선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사법리스크를 일부 덜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측으로선 '노조리스크'가 부각된 셈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파업의 불씨도 차츰 점화하고 있다. 20일 삼성전자와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올해 임금인상률 협의를 위한 6차 본교섭을 열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사측은 기본인상률 2.5%를 제시했지만 노조는 8.1%를 요구하고 있어 간극이 큰 상황이다. 결국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중노위 중재에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 조정은 중지되고 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이 가능한 쟁의권을 갖는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이미 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최악의 경우 계열사마다 동시다발적 파업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개별 활동으론 사측과의 협상에서 불리하다고 느낀 노조들이 세를 불리고 있고, 통상임금 이슈도 커질 수 있다"며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삼성으로선 고민거리가 더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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