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세계는, 진화한다"…장재현, '파묘'의 실험 (시사회)

정태윤 2024. 2. 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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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정태윤기자] "불편하더라도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만들고 싶었습니다." (장재현 감독)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 장인이다. 영화 '검은사제들'과 '사바하' 등으로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다음은 '파묘'다. 

이번에도 오컬트 미스터리물.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이 주인공. 이들이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며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았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준 오컬트와는 어딘가 달랐다. 한마디로, 실험적이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었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유령 영화를 만들면, 만듦새는 괜찮겠죠. 그러나 저는 다음 스텝을 밟는 게 더 의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묘' 측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배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장재현 감독이 자리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묫자리를 잘못 쓴 한 가족의 의뢰로 시작된다. 악지 중의 악지에 자리한 이름 없는 묘. 의뢰인은 "이장할 때 관을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한다. 

금기를 설정하고, 이를 깨뜨리며 시작되는 저주. 오컬트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롯이다. 익숙한 스토리라인 아래 흥미진진하게 전개를 끌고 나갔다.  

그러나 후반부 장르를 조금 비틀었다. '겁나 험한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옆나라 일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장 감독은 "1년 동안 장의사, 풍수사와 함께 이장 작업을 다녔다. 묘에서 관을 꺼내 태우는 과정에서 영화의 주제에 영감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과거에 잘못된 뭔가를 꺼내서 그걸 깨끗이 없애는 정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다. 그걸 파묘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그동안 해왔던 귀신, 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 감독은 익숙함보다, 도전을 택했다. 한 발짝 나아간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그는 "뱀파이어, 미이라, 강시 영화도 있지 않나. 바로 옆나라에서 온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도 됐다.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실 수 있게 최대한 노력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때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란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재미보다는 화끈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재현 감독)

2개의 이야기를 이어 붙인 듯한 이미지. 자연스럽진 않지만, 확실히 새롭다.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에는 호불호를 논할 수 없었다. 

압권 그 자체. 최민식은 진중하게 중심을 잡으며 몰입감을 높였다. 김고은과 이도현은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에 유해진의 코믹하고 친숙한 연기로 간을 쳤다. 

최민식은 땅을 찾는 풍수사 '상덕'을 맡았다. 상덕은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다. 땅에 대한 철학을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최민식은 높은 산을 오르고, 삽질을 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그는 "제대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오랜만에 삽질을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쾌하게 화합이 잘 되는 현장이었다. 물리적인 피곤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삽질도 유쾌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데뷔 첫 오컬트물에 도전했다. 최민식은 "민속신앙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저평가되는 면이 있지 않나. 그런데 장 감독은 끝없이 그 장르에 관심을 갖고 매달리더라"고 말했다. 

"장 감독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영화를 촘촘히 짠 카펫처럼 잘 만드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장 감독의 조감독이라 생각하고,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까지 영화를 조각하는 모든 과정을 보고 싶었습니다." (최민식) 

장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세밀했다. 먼저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CG를 최대한 덜어냈다. 블루매트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최대한으로 구현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묘. 약 1,200평에 달하는 세트장 부지에 2m 넘게 흙을 쌓아 올리고 50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옮겨 심었다. 포크레인에 불을 매달아 도깨비불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다. 

장 감독은 "배우들이 연기를 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진짜로 보여줬을 때의 배우들의 리얼한 표정을 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고은(화림 역)의 대살굿 장면도 마찬가지. 경이로웠다. 동물의 피를 온몸에 묻히고, 칼로 사정없이 돼지 시체를 찔렀다. 경문을 외우며 말 그대로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다. 

김고은은 "카메라 4대로 촬영해 리얼함을 살렸다. 굿을 할 때 계속해서 뛰어야 했는데,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유해진은 김고은에 대해 "시간 날 때마다 경문을 외우고, 현장에 오신 무속인 분들을 쫓아다니면서 레슨을 받더라"며 "피 말리는 연습으로 준비했구나 느꼈다"고 치켜세웠다. 

장르는 다크했지만, 현장은 화기애애했다. 장 감독은 "이번에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베테랑 배우분들과 함께해 다른 영화들보다 편하게 찍었다"고 말했다. 

'파묘'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초대되기도 했다.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쳤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장 감독은 "독일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대화하고, 놀라면 소리 지르고, 박수치며 웃고, 엔터테이닝하게 영화를 보더라"며 "우리만큼 영화의 깊은 의미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극장에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화끈하게 만들고 싶었다. 체험적인 육체파 영화"라며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극장에서 보시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자신했다. 

'파묘'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사진=이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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