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공공의 적` 된 의사, 명령과 강압으론 문제 해결 어렵다
누가 의대 정원을 단번에 2000명 늘리기로 최종 결정한 것일까? 지난 6일 보건복지부가 2000명을 증원, 2035년까지 의사 수를 1만명 늘리겠다고 발표했을때 든 생각이다. 아무리 의사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의사 반발에 따른 의료 대란 우려, 이공계의 의대 쏠림현상 심화, 교육 현장의 수용가능성 등을 감안할때 과한 숫자였기 때문이다. 2000명은 현 의대 정원(3058명)의 65%로, 의대를 한꺼번에 25곳 늘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업무개시명령 발동, 주동자 구속수사 시사 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이어지고 있으며, 의대에선 집단 휴학계 제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로선 명령만으로 의료 현장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번 갈등의 쟁점은 의사 수가 부족한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필수·지역의료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의료의 질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최하위인가라는 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정부는 취약지구 의사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5000명이 필요하고, 여기에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할 경우 2035년에 1만명 수준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2021년 기준 한국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평균 3.7명) 중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적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의사 수는 적지 않은 수준이며, 의료접근성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한국이 2.51명으로 미국 일본과 비슷하고, OECD 평균의 70% 수준이다. 하지만 의사밀도(10㎢당 활동의사 수)는 한국이 13.04명으로, OECD 중 세번째로 높다. 도시와 농촌 간 의사밀도 차이는 OECD 14개국이 1.8명(도시 4.7명·농촌 2.9명)인 반면, 한국은 0.5명(도시 2.6명·농촌 2.1명)으로 일본 다음으로 작다. 또 한국의 의사 수 누적 증가 속도는 지금도 OECD 평균의 2.6배로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정원을 늘린다고 필수·지역의료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는 게 의사들의 얘기다. 인구소멸지역이 늘어가고,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에서 보듯 민사 소송으로 환자와 병원 간 해결됐던 문제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된 마당에 누가 수가도 낮은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하려고 하겠냐는 것이다. 피부과 의사인 함익병씨는 "의사로선 법원이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줘야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한다.
의협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99.2%는 원하는 날 외래진료가 가능하고, 접수 후 대기시간은 은행보다 짧은 평균 19.9분이다. 뇌경색환자의 사망률은 한국이 OECD 평균의 절반 이하며, 치료 가능한 사망률은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로 낮다. 의사 수가 태부족하다면 의료 서비스도 형편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의협 측 주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화물연대 파업때처럼 명령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로선 지난 19년간 번번이 실패한 정원 확대를 이번엔 꼭 이루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지금 보건복지부의 행보는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코로나때는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더니 이젠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놓고 정부 명령을 들으라 한다고 MZ 세대 의사들이 따를 것인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의학전문대학원도 결국 실패로 끝났다. 현장의 디테일은 놓친채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계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장은 2000명은 무리한 결정이라며 350명 정도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처음부터 현 의대 정원의 10%선인 300~400명 가량 단계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면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고 나서진 못했을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먼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불의의 의료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서로 네 탓만 할 것인가. 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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