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심장질환자도 ‘수술 불가’…“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윤연정 기자 2024. 2. 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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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는 해놓고 수술은 못 한다고 하면 어떡하라는 거야."

친정엄마의 척추신경 혹 제거 수술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40대 박아무개씨가 20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층 로비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박씨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수술 예약까지 한 뒤 대구로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이날 병원으로부터 수술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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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8시20분 ‘진료 불가’ 안내가 붙은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대기 인원 및 시간 등을 안내하는 안내 모니터의 화면(왼쪽)도 꺼져 있다. 고나린 기자

“진료는 해놓고 수술은 못 한다고 하면 어떡하라는 거야.”

친정엄마의 척추신경 혹 제거 수술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40대 박아무개씨가 20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층 로비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박씨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수술 예약까지 한 뒤 대구로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이날 병원으로부터 수술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엄마 척추신경이 마비되고 있어서 최대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한다”며 “삼성서울병원에선 못할 거 같고 다른 병원 예약 잡아놓은 것도 취소한다고 할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의대 정원에 반발해 ‘빅5(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병원 전공의들이 19~20일에 걸쳐 집단 사직에 돌입하자, 이들 병원 곳곳은 환자·보호자들의 혼란과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안과 등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에서부터 ‘의료 대란’이 먼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이날 아침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입구엔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라서 진료가 불가하다’는 안내판이 생겼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한아무개(32)씨는 “지병 때문에 응급실을 종종 찾지만 이런 안내를 본 적 없다”며 발길을 돌렸다. 경남 마산에서 올라온 박아무개(46)씨는 “어제 낮 2시반에 응급실 와서 2시간 줄 서서 진료를 받았다. 어머니가 췌장암이라 빨리 수술 안 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언제 수술할지 알려주지도 않고 기다리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2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안과병원 3층 진료실마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채운 기자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정보제공’ 앱에는 이날 오후 2시45분 기준 ‘서울아산병원에서 성인 응급실 성형외과 단순봉합 진료 불가능하고, 중환자실 부족으로 외과 트라우마 환자 수용불가하다’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당장 급하게 해야 하는 수술을 제외하고 20일 기준 수술 30%가량 줄였고, 서울성모병원도 위·중증도에 따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 등에 대한 비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병원 현장에 남은 의료진들은 밀려드는 환자를 받으며 또 다른 이들에겐 수술 취소·연기를 알리느라 분주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의 간호사 ㄱ씨는 “병원에서 일일이 환자에게 전화해 파업 중인데 수술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있다”며 “병동 수술 10건 중 절반이 줄었다. 전임의가 전공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인력이 적어 커버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모든 과에서 웬만하면 수술을 취소하려고 하다 보니, 다음주 넘어서면 사실상 수술이 아예 안 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료 차질이나 수술 중단이 가장 먼저 현실화한 곳은 안과 등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과들이다.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은 안과 일부 수술을 취소하거나 당일 외래진료를 받지 않도록 했고, 신촌세브란스 등 주요 병원 안과들은 전공의 진료 중단으로 외래진료가 불가하다는 안내 문자를 환자들에게 보냈다.

출산을 앞두고 무통 주사가 불가능하다거나 분만 일정 연기 통보를 받는 산모들도 늘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가 없어 지난 19일부터 출산 시 무통 주사가 불가능하다고 산모들에게 통지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가 없어 무통 주사를 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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