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제3지대 빅텐트'…합당부터 붕괴까지
표면상 '배복주' 원인…의사결정 시각차 극복 못해
[아이뉴스24 정태현 기자]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은 '깜짝' 발표로 들썩였다. 여야 거대 정당에서 빠져나온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 원칙과상식 등 제3지대 4개 세력이 합당한 것이다. 당명은 개혁신당, 당 대표는 이낙연과 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였다.
◇ 거대양당 견제 위해 모인 '물과 기름'
거대 양당을 견제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정치권 기대가 모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무의미한 경쟁으로 피로가 쌓인 정치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념과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만큼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네 세력은 전날 밤까지도 당명과 지도 체제 관련 결론을 내지 못하고 발표 당일까지 막간 협상을 계속한 끝에야 합당을 선언할 수 있었다.
설 명절 밥상에 제3지대 이슈를 올려야 한다는 욕심에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했다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이어졌다. 공약·공천 등 총선 과정에서 언제든 파열음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분열의 불씨는 시작부터 살아 있었던 셈이다.
긴 연휴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 13일부터 분열 조짐이 포착됐다. 이준석 공동대표가 이날 지지층들의 이탈을 신경 써 개혁신당 내부 비판에 나서면서다. 표면적인 대상은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였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정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념을 내세운 이들에게 "(개혁신당의) 주류 정책으로 자리 잡기 힘들 것"이라고 박하게 대했다.
이준석 공동대표의 이런 행보는 통합 전 개혁신당 당원을 비롯한 지지층 달래기 차원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청년남성 층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이 정계 대표적 페미니스트인 류 전 의원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 이력이 있는 배 전 부대표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게 개혁신당 내 분석이었다. 실제로 설 연휴간 개혁신당 당원 상당수가 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이준석 공동대표는 더 나아가 "통합 개혁신당의 주류 시각은 (통합 전) 개혁신당 당원들의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낙연계 속을 긁었다. 이어 "새로운미래를 자극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낙연계가 반감을 직접적으로 표한 시기도 이때부터다.
◇ 내홍 격화에 고성과 "전두환이냐" 비판도
김종민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 공동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이준석 공동대표가 이낙연 공동대표에게 선거 정책 전반을 지휘하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그것은 선거운동의 전권을 위임해 달라는 것"이라며 "2월 9일 통합신당 합의 정신을 깨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대표에게 쌓였던 불만은 다음 날인 19일 3차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회의에서 4·10총선 선거운동 지휘를 이준석 공동대표에 위임하기로 하자, 이낙연 공동대표와 김종민 최고위원은 회의장을 박차고 떠났다. 이 과정에서 "이게 회의냐"라는 고성도 오갔다.
김 최고위원은 회의장에서 나온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운동 전체를 이준석 대표 개인한테 맡기는 것은 민주정당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전두환이 나라 어수선하니 국보위 만들어서 다 위임해달라고 국회 해산한 것이랑 뭐가 다른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새로운미래로 돌아가 당을 재정비하고 선거체제를 신속히 갖추겠다"며 개혁신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지난 9일 개혁신당과 통합을 선언한 지 불과 11일 만이다.
그는 "통합주체들의 합의가 부서졌다. 2월 9일의 합의를 허물고 공동대표 한 사람에게 선거의 전권을 주는 안건이 최고위원회의 표결로 강행처리됐다"며 "그것은 최고위원회의 표결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 정신은 훼손됐다. 그들은 특정인을 낙인 찍고 미리부터 배제하려 했다"면서 "낙인과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답습됐다. 그런 정치를 극복하려던 우리의 꿈이 짓밟혔다"고 토로했다.
◇ 남은 건 훼손된 개혁 진정성
통합 명분으로 내걸었던 거대 양당의 심판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파국을 맞았다. 이낙연 대표와 이준석 대표 모두 각자의 당을 재정비해 총선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맞이한 파국으로 훼손된 진정성은 이른 시일 내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계와 이낙연계 간 갈등은 결별 이후에도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천관리위원회장 선임과 관련해 이견을 보이는 등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태현 기자(jth@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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