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빠지자…"일반간호사를 교육없이 PA간호사로 배치"
보건의료 양대 노조로 꼽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의료연대본부)가 20일 전공의의 집단 사직서 제출과 진료 중단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의사 집단 진료 중단 사태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의료현장에서는 수술 취소와 연기, 검사 중단, 병상 축소와 입원 예약 취소, 조기 퇴원, 타 병원으로 전원 등의 조치로 환자들이 극심한 피해와 고통·불편을 겪고 있다"며 "불만과 항의, 민원도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악한 현장 상황에 따르면 전공의의 업무는 간호사 등 타 직군에 떠넘겨지고 있다. 진료부가 동의서나 검사·처치에 대한 업무 협조를 간호부에게 요청하거나 PA간호사에게 전공의 업무를 넘기는 사례도 보고됐다. 심전도 검사(EKG), 욕창 드레싱, 위관과 도뇨관 삽입 등을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등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심지어 일반간호사를 아무런 교육·훈련도 없이 갑자기 PA간호사로 배치해 의사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병원도 있다"며 "의료사고 발생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응급상황 발생 시 심폐소생술 대처, 긴급 투약 등 대응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환자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근무일을 늘리거나 2시간 이상 근무 시간을 연장하는 사례, 통상근무를 3교대 근무로 변경하거나 당직근무에 투입하는 사례, 이미 정해진 휴가를 취소시키거나 반대로 수술·환자감소와 병동 축소로 원치 않는 연차휴가 사용을 강제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들이 조속히 정상 진료에 복귀하고 대화에 나설 것 △정부가 필수 의료·지역의료 살리기 협의체를 마련해 구체적 방안 논의에 착수할 것 △병원은 의사 집단 진료 중단으로 인한 불가피한 업무 조정을 노조와 충분히 협의할 것 △의사단체와 정부, 정치권이 합의책을 도출할 것 등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집단행동이 이어질 경우 '국민 촛불 행동'도 진행할 방침이다.
서울대병원분회가 소속된 의료연대본부 역시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의협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의대 증원 거부를 위한 명분 없는 싸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들은 개인적 사유로 사직한 것이라 강조하지만 한날한시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하는 것은 명백한 진료 거부 집단행동"이라며 "병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본부에 따르면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로 인해 6개월 동안 수술을 기다렸던 환자들의 수술 예약까지도 취소되고 있다. 신규 입원환자는 받지 않고 퇴원 예정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환자들의 입원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사가 해야 할 업무를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이 도맡는 불법 의료 행위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인력에 연차 사용을 권하는 등 스케줄 조정을 종용하고 있다"며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해 불법 의료를 조장하거나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 시간 변경동의서를 받는 병원도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이율배반적인 입장과 행동은 의사 외 병원 노동자들도, 국민들도 공감하기 어렵다"면서 "정부도 공공의대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 등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고 의사와 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어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한 의대 증원은 국민들의 요구이고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가 붕괴하는 것을 막는 것은 국가적 과제"라며 "정부와 의사는 공공의료와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할 공론의 장을 열고 시민 참여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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