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떠난 병원들, 신규입원 안 받고 기존 환자마저 내보내(종합)
전공의 이탈 많은 병원, 수술 '절반'으로 즐이기도
환자들 전전긍긍 "암환자 퇴원수속 밟아", "1년 전 예약된 자녀 수술 연기"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서혜림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자 각 병원이 '비상진료체제'를 가동하며 대응하고 있다.
병원들은 우선 전공의의 빈 자리를 교수와 전임의들로 채우고, 진료 일정을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수술과 진료가 미뤄지고 신규 입원을 제한하면서 환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병원들은 기존 입원 환자마저 내보내는 실정이다.
"전공의 사직으로 진료 지연 예상됩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각 병원 전공의가 근무를 중단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업무공백'이 현실화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수술 일정을 50% 정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진료과별로 조치 중이다.
이미 이번 주에 예정됐던 수술 중 긴급하지 않은 환자를 추려 입원과 수술 연기를 안내했고, 외래 진료도 축소했다. 환자들에게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 진료를 재예약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안과는 진료실 앞에 "현재 의료원 전공의 사직 관련으로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됩니다.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전부 빠졌을 때 기존 대비 '50%'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며 "절반만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고, 진료과별 인력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수술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서울성모병원이 포함된 가톨릭의료원과 함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병원으로 꼽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응급·중증 수술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당장 21일부터는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일 예정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오는 26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갑상선암 환자는 수술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암 수술 전부터 취소라니, 암 환자는 암을 키우라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다른 병원도 환자의 중증도나 응급도를 고려해 입원과 수술 일정을 조절하고, 신규 환자의 입원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일부 진료과는 환자들의 퇴원을 다소 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평소 수술의 60∼70%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고, 삼성서울병원도 일평균 수술의 30%가량 감축하며 대응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신규 환자 입원을 제한하고 수술 일정을 조정하는 동시에 교수들을 투입해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도 전공의들의 이탈로 진료와 검사 지연이 이어지고 있다며, 중증·응급 위주로 진료하는 형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도 환자들의 중증도에 따라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일부 진료과는 환자들에게 긴급하지 않을 경우 수술이 연기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전남대병원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차질이 불가피한 만큼, 응급하지 않은 일반병동 환자들을 먼저 내보내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120명가량 수용할 수 있는 이 병원 신경외과 입원실은 병실마다 입원환자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30여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환자만 '전전긍긍'…"암 환자인데 퇴원한다"
환자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가 지속해서 이어질 경우 결국 피해는 환자의 몫이라는 점에서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보호자는 "어머니가 최근 폐암 진단을 받고 서울시내 대형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한 검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당장 검사도 못 받게 생겼다"며 무기한 연기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퇴원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다.
이 보호자는 "파업 때문에 정상적 진료가 힘들어 인근 다른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다음 달 다시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잡아야 환자는 물론이고, 암 의심 소견을 받고 병원에 추가 검사를 예약한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검사가 남아있는 만큼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미 병원 현장이 '아수라장'이라고 전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의료연대는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환자들의 입원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있다"며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라고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통해 환자 불편 사례를 취합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접수된 34건 중 수술 취소는 25건, 진료 예약 취소는 4건, 진료 거절은 3건, 입원 지연은 2건이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신고 사례 중에는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휴직까지 했으나, 입원이 지연된 경우도 있다.
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전공의 업무공백을 교수들이 채우고 있어 벌써부터 피로도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24시간 적잖은 노동강도로 지속해서 진료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며 "중증 의심 환자는 여전히 신속하게 보고 있지만, 환자들의 대기 시간도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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