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당도 평가인가”…‘비명 학살’ 논란에 野일각 ‘부글부글’
당 일각 ‘총선위기론’ 확산…“대형사고 터지지 말란 법 없어”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총선 공천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잡음이 끊이질 않는 모습이다. 경선 감점 대상자인 '하위 20%' 명단에 포함된 현역 의원 대부분이 비이재명(비명)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실제 감점 대상자 중 일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를 정면 비판한 가운데, 당 일각에서는 "공천이 흔들리면 총선 패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연의 일치? 비명계 연이어 '평가 낙제점'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해 연말 당 소속 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최근 당은 평가 결과 하위 20%에 들어간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이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선에서 하위 10~20%는 득표수의 20%를 감산당하고, 최하위 10%는 득표수의 30%를 감산당한다.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민주당이 '하위 20%'로 분류한 의원은 총 3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낙제점을 받은 31명 중 대부분이 비명계 의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전날(19일) 한 언론은 민주당 현역 의원 평가 최하위권에 들어간 31명 가운데 90%에 이르는 28명이 비명계라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른 결과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대상자가 된 의원들은 자신들이 '이재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급기야 탈당을 선언하는 의원도 나왔다. 4선 중진이자 현역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은 전날 하위 평가 대상에 선정된 것에 불만을 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김 부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친명도 아니고 반명도 아니다"며 "그런 저를 반명으로 낙인찍었고 이번 공천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명분으로 평가점수가 만들어졌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유치원 3법'을 만들고 '삼성저격수'로 불렸던 박용진 의원도 '하위 10%' 대상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탈당 대신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며, 비명을 겨냥한 '자객 공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박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엔 친이재명계 인사인 정봉주 전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공천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 한 번도 권력에 줄 서지 않았고 계파정치, 패거리 정치에 몸담지 않았다"며 "오직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만을 바라보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왔고, 공정과 원칙이 아니면 의정활동에서도, 정당활동에서도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많은 고초를 겪었다"며 "오늘의 이 모욕적인 일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 윤영찬 의원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임혁백 공관위원장으로부터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며 "민주당을 지키려는 길이 순탄치 않으리라 각오했지만, 하위 10%라는 결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윤 의원은 당 비주류 모임 '원칙과상식'에서 활동했으나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이 탈당할 때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공천 과정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으며 특정 계파 사람들만 구제해주는 계파적 공천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한다"며 "결국 정성평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됐을 텐데, 정성평가가 어떻게 나왔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 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목표는 무엇인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인가, 아니면 이재명 대표 개인 사당화의 완성인가"라고 반문했다.
野 청년들도 분노…"이러다 총선 진다"
공천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자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이 답보하는 가운데, 계파 갈등까지 발발하면 '총선위기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헌기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용진 의원의 '하위 10% 통보' 기사와 박 의원이 정봉주 전 의원보다 지역 경쟁력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한 뒤 "조직 내부에서 밉보였다고 이런 식으로 해도 국민도 같이 납득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은어) 당도가 기준인가"라고 꼬집었다.
하 전 부대변인은 다른 글을 통해서는 '하인리히의 법칙'(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총선 위기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에 있어서 '대형사고'는 무엇일까? 총선 패배"라며 "이건 그냥 '당'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권 같은 세력에게 입법부의 견제 장치까지 해제되는 건 대한민국 전체에 있어서 엄청난 악몽이다. 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만들면 그것만으로 역사에 죄짓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온갖 징후들이 보이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예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공천 잡음이 계속되면 민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정파를 떠나 민주당의 최근 공천 상황이 납득가능하고, 정상적이라 판단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반문한 뒤 "무리하게 공천을 진행하려 한다는 정황이 이미 드러났다. 이재명 대표가 강조했던 혁신공천과 멀어질수록 총선에는 분명한 악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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