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술 1년전 잡아놓고 휴직했는데…" 진료 중단 속출

김지희 기자(kim.jeehee@mk.co.kr),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2024. 2. 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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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사직 첫날 병원 가보니
강동성심, 소아과·안과 차질
건대병원 외과수술 불가 공지
영남대는 중환자만 겨우 진료
세브란스 일부 외래진료 중단
대구서 상경한 60代 환자
"대기 2배 더 걸려" 불편 호소

◆ 의료대란 ◆

주요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은 20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진료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환자가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첫날인 20일 평소 중증·응급 환자가 많이 몰리는 빅5 병원 응급실 앞은 오히려 평온했다. 빅5 병원 전공의들 파업과 응급실·수술실 제한 운영 소식이 미리 알려지면서 소방서나 응급환자 이송기관에서 다른 병원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종합병원에서 응급실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응급실은 이날 오전부터 인력 부족을 이유로 안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의 진료가 불가하다는 공지를 띄웠다. 광진구 건국대병원 응급실도 전날부터 외과 응급수술 등이 불가하다고 안내했다.

지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구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영남대학교병원과 가톨릭대학교병원 응급실은 산부인과, 신경과, 소아과, 성형외과 등 다수의 진료과목 관련 환자들을 아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영남대병원의 경우 중환자만 확인한 후 겨우 진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우려했던 의료 차질은 현실화됐다. 외래진료 대기시간이 평소의 2~3배로 길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진료가 취소돼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도 나왔다. 일부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당직의 등 인력 부족으로 환자를 받지 못하는 사태도 나타났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안과병원 진료실 앞에는 '진료 지연으로 혼선이 예상됩니다. 특수처치와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다른 빅5 병원보다 하루 먼저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세브란스병원은 전날까지만 해도 외래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이날 안과 등 일부 외래진료가 중단됐다. 안과병원 진료실 앞 화면에는 '예약 지연 시간 60분'이라는 안내 문구도 떠 있었다.

안과 진료를 받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60대 환자는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도 계속 진료가 취소되지는 않을까 확인했다"며 "평소 대기시간이 30분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안과는 전문의 진료에 앞서 이뤄지는 예진 등 전공의가 맡는 업무가 많은 과로 분류된다. 안과병원 측은 "진단서·소견서 발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하고 있었다.

병원들이 파업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진료와 수술, 입원 일정 등을 연기했지만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혼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오후 일부 과의 예약 지연 시간이 100분을 넘기면서 일부 대기 환자들이 "대체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며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비는 평소처럼 환자로 붐볐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 모습을 찾는 것은 평소와 달리 쉽지 않았다. 병원을 방문한 80대 환자는 "양평에서 2시간이나 걸려 진료를 보러왔는데 당일에 취소됐다"면서 "의사들이 왜 환자를 방패 삼아 정부와 맞서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무사히 진료를 받은 환자들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래진료를 보러왔다는 김 모씨(73)는 "진료가 취소되거나 연기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예약대로 진행됐다"며 "뉴스를 보면서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 같아서 다음에 올 때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간병인으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60대 윤 모씨는 "아직은 크게 와닿는 일은 없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이 상황이 나빠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별일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50대 심 모씨 역시 "진료를 봐주시는 교수님이 평소보다 피곤해 보이셨다"면서 "두 달 뒤 다시 병원에 와야 하는데 예약을 제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별로 관내 시·도립병원 105곳, 지방 의료원 39곳, 보건소 259곳 등을 중심으로 진료를 확대하고 응급의료기관의 필수 기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데 지자체 의료 역량을 집중하도록 했다. 또 문을 여는 의료기관과 비상 진료기관 안내를 철저히 할 것도 강조했다. 이날 행정안전부는 회의에 앞서 지자체 비상 진료체계와 지역 의료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17개 시도에 과장급 지역책임관을 긴급 파견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하는 의사의 집단행동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지자체는 비상 진료체계가 중단 없이 가동되도록 철저히 대비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지희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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