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이 병원 소개 브로커 노릇···구멍 뚫린 산재보험
113.2억 규모 부정수급 적발
병원 64번 바꿔 4년 요양도
정부 산재제도 개선 TF 발족
산업재해를 당한 A 씨는 B 노무법인 도움으로 자신의 소음성 난청을 산재로 인정받았다. B 노무법인은 A씨에게 진단 병원을 소개한 뒤 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하고 검사비를 대신 냈다. 그 대가로 B 노무법인은 A 씨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받은 산재 보상금 약 4800만 원 중 3분의 1인 1500만 원을 수임료로 받았다. 재해자 C 씨는 척수 손상으로 두 다리가 마비돼 장해 등급 1급을 판정 받았다. 하지만 그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것이 주변에 목격됐다. 결국 C 씨는 장해 등급 재결정은 물론 부정 수급액을 반환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 보상금을 노리고 제도를 악용한 환자와 병원뿐만 아니라 산재 신청과 승인을 대리하면서 과도한 이익을 챙긴 브로커들의 행태가 드러났다. 정부는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수준이 과도해 법을 어겨서라도 산재 혜택을 받으려는 수요가 높은 상황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판단했다. 이런 상황을 막을 관리 체계도 미흡해 제도 전반의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극단 위법 사례를 일반화해 산재보험의 문턱을 높여 선의의 산재 환자 혜택까지 줄이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산재보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20일 3개월간 산재보험 특정 감사와 노무법인 점검을 벌여 브로커 개입, 명의 대여, 과도한 수수료 요구 등 위법 정황이 확인된 11개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사례를 보면 기업형으로 연간 100건의 사건을 수임한 뒤 환자가 받은 산재 보상금의 최대 30%까지 지급 받았다. 노무사나 변호사가 업무 처리를 직접 수행하지 않고 사무장이 산재 보상 전 과정을 처리한 뒤 수임료도 자신의 통장으로 수수한 사례도 있었다. 산재보험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정 수급 또한 이번 감사 결과로 드러났다. 고용부는 자체 조사한 486건에서 113억 2500만 원 규모의 부정 수급을 적발했다. 고용부는 환수 조치 등 후속 조치에 나선다.
고용부는 산재보험 제도 전반의 구조적 문제점이 이 같은 위법 행위를 부추긴 측면이 짙다고 판단했다. 산재보상 문턱이 낮고 보상이 과도해 산재보험 혜택을 오래 누리려는 수요를 높였다는 것이다. 산재보험 악용자들은 산재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산재보험 요양 절차가 허술한 점을 파고든 것이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 산재 신청 건수와 보상 급여액 모두 2017년 대비 5배 넘게 늘었다. 게다가 전체 요양 환자의 약 48%는 6개월 이상 장기 요양 환자로 조사됐다. 뇌혈관 질환으로 재해를 입은 한 환자는 78세임에도 월 675만 원의 장해 급여를 받고 있다. 이 경우 위법은 아니지만 고용부가 산재보험 보상 수준의 적정성을 고민해야 할 사례로 제시했다.
산재보험 관리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재해자는 전문 치료를 이유로 의료기관을 64회나 변경해 4년 이상 요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변경 승인 요건이 명확하게 없는 탓이다. 문제는 민간 산재 병원이다. 현재 산재 병원은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직영 11곳과 전국에 약 6100곳이 되는 민간 산재 병원으로 나뉜다. 민간 산재 병원은 시설·인력·장비 등 요건만 갖추면 산재 병원으로 지정된다. 하지만 이 병원이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의구심을 키운다. 고용부 조사 결과 이들 병원은 서류 보관 상태, 입원 환자의 무단 외출 여부 등 형식적인 점검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부실 의료기관에 대한 지정 취소는 사례가 전무하다. 부실 병원을 퇴출하는 방식의 자정 기능이 없는 것이다. 고용부는 산재 보상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산재보험 제도 전반을 개선할 방침이다.
이번 감사는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 직영 병원, 산재 환자 간의 일명 산재 카르텔 의혹이 제기돼 이뤄졌다. 고용부는 이 카르텔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재보험은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과잉 보상되는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며 “산재보험 제도가 진정한 산재 근로자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고용부의 산재보험 개선 방향이 혜택 축소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특정 감사 이후 이미 산재 승인 문턱이 높아졌다고 느끼는 산재 노동자와 환자가 늘고 있다”며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산재 노동자의 신속한 치료와 보상, 원활한 직장 복귀”라고 지적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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