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감소에 고등학교도 외국인 유학생 받았다
베트남 등 4개국 현지 중학교서 총 48명 뽑아
인구소멸지역 의성군 등에 직업계고 8곳 입학
졸업 후 취업시켜 정착 유도...호응 높으면 확대
20일 오전 경북 영덕군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에 위치한 경북교육청 해양수련원. 평소 경북 지역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재난대응 등 단체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지만 이날의 주인공들은 외국인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경북도 내 직업계고등학교 8곳이 전국 최초로 해외에서 선발한 외국인 유학생들로 다음 달 4일 입학식 때까지 약 2주간 한국어 및 한국 문화에 대한 기초교육을 받는다.
베트남 국적의 응우옌 하 비(16)는 “지난해 9월 한국 고등학교에서 유학생을 뽑는다는 말에 곧바로 지원서를 넣었고,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매일 4시간 이상 한국어 과외 수업도 받았다”며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취업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응우옌처럼 올해 경북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베트남 28명, 태국 8명, 몽골 8명, 인도네시아 4명 등 4개국 총 48명(남 29명, 여 19명)이다. 현재 국내 고교 입학생과 비슷한 16, 17세로 기숙사가 있는 직업계고등학교 8곳에 3~9명씩 진학한다.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3년 과정의 고교 수업을 받고 교복과 기숙사비 등 각종 경비도 낸다. 교육청은 유학생들이 순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보호자 역할을 할 후견인을 지정했고, 학생 한 명에 교사 한 명이 담당, 관리하도록 했다.
경북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고교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나선 건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다. 1982~2022년 문을 닫은 경북의 초·중·고교는 735개로 전남(839곳)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입학생이 '0명'인 경북도 내 초등학교는 31곳으로 17개 광역단체 중 최다였다.
고심을 거듭한 교육청은 외국인 학생 유치만이 살길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2024년도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에 외국인 전형을 신설했다.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이미 일부 지역 학교에 외국인 학생수가 급증하는 추세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김미정 경북교육청 창의인재과 장학사는 “학생수가 약 540명인 경주정보고등학교는 유학생이 없는데도 외국인 학생수가 33명이나 된다”며 “이미 현실은 외국인 유학생이 입학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절실한 국내 회사가 입도선매 격으로 먼저 유학생을 뽑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포항시 한국해양마이스터고는 원양어업회사인 동원산업㈜의 요구에 따라 인도네시아 유학생 4명을 선발했다. 학생들이 3년간 부담해야 할 경비도 모두 회사가 내기로 했다. 졸업 후 반드시 동원산업에 항해사로 입사하는 조건이다. 인도네시아 유학생 샘 안토니(17)는 “선발 당시 동급생 500명이 전부 지원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며 “열심히 공부해 꼭 필요한 직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가장 까다로운 점은 비자 발급이었다. 외국인 유학생들 출신국 대부분이 국내 불법체류자가 많은 국가인 데다 이처럼 대규모로 들어온 전례가 없기 때문. 법무부와 외교부 등 유관 부처와의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교육청은 고교 유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거나 대학에 들어가서라도 계속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들을 인구소멸 위기가 가장 심각한 의성군과 성주군 등에 있는 직업계고등학교에 우선 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청은 학생들의 적응 상황을 지켜본 뒤 유치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외국인 학생들 또한 정착을 바라고 있다. 몽골 유학생 난딘 에르덴(16)은 “성주군에 있는 국제조리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졸업 후 성공적으로 취업해 한식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태국에서 온 풍가나파핫 라탄파라싯(16)도 “직업교육을 잘 배워 자격증을 많이 따고 행복한 한국 사람으로 오래 남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영덕=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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