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스피싱 가해자?”…사각지대 놓인 선불유심 불법거래 [취재후]

최인영 2024. 2. 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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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30대 A 씨는 갑작스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화근이 된 건, A 씨가 한 달 전쯤 개통했던 선불유심이었습니다.

A 씨는 광고에 적힌 연락처로 곧장 문의했고, 안내대로 본인과 배우자의 명의로 총 6개의 선불유심을 개통해줬습니다.

이후 A 씨의 명의로 개통한 선불유심이 범죄 조직으로 넘어갔고, 그대로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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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30대 A 씨는 갑작스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 '문의드릴 게 있으니 연락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자에 회신한 A 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A 씨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근이 된 건, A 씨가 한 달 전쯤 개통했던 선불유심이었습니다.

당시 배우자의 병원 진료비가 급히 필요했던 A 씨의 눈에 한 광고가 들어왔습니다. '선불유심을 개통해주면 5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A 씨는 광고에 적힌 연락처로 곧장 문의했고, 안내대로 본인과 배우자의 명의로총 6개의 선불유심을 개통해줬습니다. 그렇게 명의 대여 값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후 A 씨의 명의로 개통한 선불유심이 범죄 조직으로 넘어갔고, 그대로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던 겁니다.

당시 아무런 의심을 할 수 없었냐고 묻자, A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죄가 성립되는구나, 나중에 알게 됐어요. (유심 개통하면) 게임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믿었던 거죠. 그걸 믿고 일단은 급한 불을 껐으니까..."

-A 씨

유심 개통을 위해 필요했던 건 신분증 사본과 포털사이트 본인인증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만으로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손으로 6개의 유심이 개통된 겁니다.

■"보이스피싱에 쓰실 건가요"…선불유심이 35만 원?

이렇게 A 씨 사례처럼 대량으로 개통된 선불유심은 어떤 방식으로 유통될까요? 그리고 어떻게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넘어가는 걸까요. 취재진이 텔레그램을 통해 직접 선불유심 판매자를 접촉해봤습니다.


'선불유심을 사겠다'고 하자 '몇 개를 살 건지', '어느 터미널에서 받을 건지'를 묻더니, 유심 하나 가격으로 35만 원을 부릅니다.

통 크게 10개를 구매하겠다고 하자, 10%를 할인해주겠다고도 합니다. 그러더니 대놓고 '보이스피싱'을 언급합니다.

"10개 사면 300만 원이죠. 10개 정도 원하시면 개인이 쓰는 건 아닌 거 같은데...보이스피싱 이런 쪽인가요? 통장에서 통장으로만 안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선불유심 판매자

타인 명의의 유심칩을 사고파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통장 간 거래를 피해달라고도 말합니다.

■선불유심이 '대포폰 온상' 된 이유는?

선불유심은 일정 금액을 미리 충전한 만큼만 쓸 수 있다는 특성상 신용불량자, 연체자, 외국인 등이 주로 찾습니다. 후불제가 아닌 만큼, 신분 인증 절차도 상대적으로 간단합니다. 요금이 추후에 고지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명의자 모르게 개통되고 유지될 수도 있는 겁니다.

선불유심이 대포폰으로 둔갑해 각종 범죄에 활발하게 쓰이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경찰에 적발된 대포폰 10대 가운데 약 8대가 선불폰이나 유심 구매 방식으로 개통됐습니다.

선불유심 개통은 알뜰폰 업계에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알뜰폰 통신사들은 통신사 간 번호 개통 현황 조회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동통신 3사에 비해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경찰에 적발된 대포폰은 총 3만여 대. 이 가운데 2만 3천 대 가까이가 알뜰통신사에서 개통됐습니다.

■ 대포폰 막을 방법 없나…정부 대책은?

선불유심을 활용한 대포폰 유통이 끊이질 않자, 정부는 2022년 개통 가능 회선을 1인당 월 3개로 제한했습니다. 그럼에도 범죄는 반복됐고, 정부는 대책을 더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1인당 180일간 최대 3회선, 즉 연간 6회선까지만 개통할 수 있도록 회선 수를 대폭 제한하기로 한 겁니다.

알뜰폰 업계에는 오는 4월까지 신분증 스캐너를 도입해, 신분증 위변조 여부 검증 등 본인 확인 절차를 까다롭게 하도록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개통 가능 회선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짧은 시간에 소액 결제가 많은 형태로 나타나거나, 한 번에 여러 대를 개통하는 현상 등의 이상징후를 모니터링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합니다.

제 목적을 잃은 선불유심은 어디선가 누군가의 전 재산을 빼앗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선불유심은 '대포폰 온상'이라는 오명,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요?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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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기자 (in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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