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적’ 나발니, 생전 옥중 편지서 “한국처럼 민주주의 가능”

정미하 기자 2024. 2. 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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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북극권인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나발니 측근과 서방이 살해 의혹을 제기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 시각) ‘알렉산드 나발니의 마지막 몇 달 동안의 발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나발니가 사망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지인에게 보낸 자필 편지 발췌본, 지인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9월, 미디어 사업가이자 지인인 일리아 크라실쉬치크에서 보낸 편지에서 “한국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했듯이 러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며 “희망. 이에 대한 나의 믿음은 확고하다”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 / 로이터 연합뉴스

사망 당시 47세였던 나발니는 2021년 1월 수감됐고, 자신의 수감 생활을 ‘우주 여행(space voyage)’이라고 불렀다. 그는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 크기의 독방에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독서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가 1년 동안 읽은 영어책은 44권에 달한다. 또한 나발니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외부와의 소통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발니가 외부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푸틴 대통령이 24년 동안 통치하는 동안 이뤄진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의 디지털화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페이지당 40센트를 내면 웹사이트를 통해 나발니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고 보통 1~2주간 검열 뒤 답장을 스캔 형태로 받을 수 있었다.

나발니는 수감 생활 중 건강이 악화했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의 의료 및 치과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발니는 정신 상태만큼은 온전했다는 것이 NYT의 설명이다. 특히 나발니는 자신의 수감 기간을 늘리기 위해 열리는 새로운 형사 사건이나, 의료 치료에 대한 불만 사항을 다루는 법원 심리 현장에서 러시아 정부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재판부가 추가로 19년형을 선고하는 판결을 내리자 법정에 있던 판사와 경찰관들을 향해 “미쳤다”고 외치기도 했다.

나발니가 수감 생활을 버틴 힘은 책에서 나왔다. 그는 법원에서 “내 감방에 책 10권을 갖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시에 10권의 책을 읽고 책 사이를 전환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늘 회고록을 경멸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회고록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추천 도서 목록을 보내기도 했다. 나발니는 몇 달간의 단식 투쟁 이후 보낸 한 편지에서 스탈린의 수용소를 다룬 알렉산드르 솔제니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다시 읽었다며 “이제서야 소련 시대 노동 수용소의 타락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나발니는 로버트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딸인 케리 케네디와 편지도 주고 받았다.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케리 케네디는 인스타그램에 나발니가 쓴 영어로 된 편지 사본을 올린 바 있다. 해당 게시물을 보면 나발니는 케리 케네디에게 “끊임없이 몰아치는 희망의 물결이 어떻게 가장 강력한 억압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부친의 연설을 인용한 포스터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발니는 생전, 케네디에 관한 책을 읽다가 “두세 번 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발니가 보낸 마지막 편지는 사망 전인 지난 13일 도착했다. 나발니의 소재는 지난해 12월이 돌연 묘연해졌다. 당시 보낸 편지에서 나발니는 미국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나발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경고했다. 같은 달 25일, 동료들은 나발니가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로 이감된 사실을 밝혀냈다.

NYT는 “나발니가 쓴 편지는 푸틴 반대 세력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들의 저항을 단결시키는 상징으로 살아갈 지도자의 야망과 결의, 호기심의 깊이가 담겼다”며 “나발니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자신감을 갖고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발니는 자신의 의제를 다듬고 정치 회고록을 연구하고 언론인과 논쟁하는 것 외에 친구들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그의 동료들이 보낸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체계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발니는 친구인 러시아 사진작가 예브게니 펠드만에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정말 공포스럽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하면 “트럼프가 재선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교정당국은 지난 16일 나발니가 산책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돌연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망 나흘째인 이날까지도 나발니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시신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나흘째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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