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절대 흔들림없다"…'윤석열다움'에 직면한 의사들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절대 안 되는 것"이라며 의료개혁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특히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에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밝히면서 증원 규모를 놓고 타협할 수 있다는 일각의 추측을 일축했다.
전공의 진료 현장 이탈 등 의사 파업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의료개혁을 관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대기업 강성노조의 저항을 뚫고 노조개혁을 단행한 '윤석열다움'이 이번에도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2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안보, 치안과 함께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이자 정부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책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의사는 군인, 경찰과 같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더라도 집단적인 진료 거부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며 거듭 의사들의 사직서 제출, 출근 거부에 부당함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의료개혁의 필요성과 대규모 의대 증원의 시급성, 정부의 대책 추진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먼저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에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삼성서울·서울아산병원) 중 한 곳의 간호사가 병원에서 일하다 쓰러졌는데도 의사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안타까운 일까지 있었다"며 "비급여 진료에 엄청난 의료인력이 유출돼 필수의료에 거대한 공백이 생긴 현실을 우리 국민은 늘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도 함께 붕괴됐다"며 "지역 필수의료체계의 붕괴는 지역에 사는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이 매우 위험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27년 동안 의대 정원을 단 1명도 늘리지 못했다. 오히려 2006년부터는 의대 정원이 줄어서 누적 합계 7000여 명의 의사를 배출하지 못했다"며 "이제 실패 자체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반복돼 온 정부의 의료개혁 실패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을 비롯해 그동안은 의사들이 파업 등으로 실력행사를 하면 국민 불안이 커지고 결국 정부가 물러났던 행태가 계속돼왔다.
현행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 5058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에도 변함이 없음을 재차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허황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하지만 30년 가까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며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증원해도 2031년에나 의대 첫 졸업생이 나올 수 있고 전문의를 배출해서 필수의료체계 보강 효과를 보려면 최소한 10년이 걸리며 2035년에야 비로소 2000명의 필수의료 담당 의사 증원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으로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란 반대 측 주장에도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원은 현재 한 학년 135명이지만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3년에는 무려 260명이었다"며 "경북대학, 전남대학, 부산대학 등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 의과대학들도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정원이 더 많았던 그때 교육받은 의사들의 역량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의학교육에 있어 더 필요한 부분에 정부는 어떠한 투자와 지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국민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추진에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은 "암 수술, 중증 진료에 뛰어난 역량을 가진 지역 병원들의 성과를 널리 알려 '묻지마 서울 쏠림 현상'도 시정해 나가겠다"며 "환자와 국민들이 지역에서 마주하는 의료서비스의 현실은 너무나 실망스럽고 어떻게 보면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의료인 여러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의료개혁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의사의 희생만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 중증 진료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고 사법 리스크를 줄여 여러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책임지고 만들겠다"고 했다.
아울러 "의대 증원은 국가 미래 전략 산업인 첨단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을 위한 의과학자와 의료 사업가 양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분야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의 진출이 필수적이고 엄청난 고소득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우리나라의 중요한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마무리 발언에서도 "의료개혁은 절대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것"이라며 확고한 입장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어 "의료개혁 과정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내각 전부가 일치단결해서 국민들이 피해가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임상의사도 중요하지만 첨단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의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의료 인력 확충은 중요하다"고 했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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