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없는 우리 형, 이제야…" 제주4·3 희생자 76년 만에 유해로 상봉

오미란 기자 2024. 2. 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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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이 형님, 이제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이날 고인들에 대한 추도사에서 "행방불명 제주 4·3 희생자 유족의 추가 채혈을 독려하고,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지속 추진해 마지막 행방불명 희생자 한 분이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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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한성·강문후씨 신원 확인 보고회… 유족들 눈물
직·방계 추가 채혈로 발굴 유해와 유전자 대조 이뤄져
2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고(故) 강문후씨, 고 이한성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에 참석한 고 이한성씨 동생 한진씨가 형의 유해가 담긴 봉안함 앞에서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한성이 형님, 이제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부슬비가 내리던 20일 오후 제주 4·3평화공원 평화 교육센터. 제단에 올려진 작은 형 고(故) 이한성씨(1923년생)의 유해함을 마주한 순간 막냇동생 한진씨(87)는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한진씨는 삼베로 고이 싸인 유해함을 어루만지며 동백꽃이 그려진 이름표와 코팅해 온 흑백사진을 그 앞에 조심스레 붙인 뒤 헌화·분향하며 꿈에 그리던 작은 형과의 상봉을 마쳤다. '제주 4·3' 발생 이후 무려 76년 만의 일이다.

2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제주4·3 희생자 고(故) 강문후씨, 고 이한성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유족 등에 따르면 제주읍(현 제주시) 화북리에 살던 고인은 '4·3' 당시 군경 토벌대의 폭압으로 피신 생활을 하던 중 1949년 6월 '자수하면 살려 준다'는 군경의 유인물을 보고 당시 화북국민학교에 주둔 중이던 경찰에 자수했다.

그러나 군경 토벌대의 회유 내용과 달리 고인은 1949년 6월28일 불법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고인은 '수십명과 함께 트럭에 태워져 제주공항 쪽으로 끌려 갔다'는 한 주민의 전언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수난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인의 가족이란 이유로 어머니 이순태씨(1901년생)와 여동생 이연옥씨(1931년생)가 1948년 12월 군경 토벌대에 학살됐다. 큰형 한빈씨(1919년생)의 경우 고인과 마찬가지로 불법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2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고(故) 강문후씨, 고 이한성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에서 고 강문후씨의 아들 강기수씨가 인사말을 끝낸 뒤 큰절을 하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고인의 유해는 2009년 제주국제공항 남북 활주로 동북쪽에서 일찌감치 발굴됐지만 신원은 최근에야 극적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채혈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계·방계 유족이 추가 채혈에 나서면서 유전자 대조가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제주도민회장이기도 한 고인의 동생 한진씨는 이날 보고회에서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오다 지난해 제주에 왔을 때 유족 채혈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기적적으로 작은 형님의 신원이 확인돼 너무 기쁘다"며 "아무런 잘못 없는 우리 형님, 이제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전했다.

이날 보고회에선 6·25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당시 치안 질서 확립을 이유로 시행된 예비검속 과정에서 행방불명된 고 강문후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도 이뤄졌다. 강씨의 아들 기수씨는 참석자들 앞에 큰절하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2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고(故) 강문후씨, 고 이한성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이날 고인들에 대한 추도사에서 "행방불명 제주 4·3 희생자 유족의 추가 채혈을 독려하고,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지속 추진해 마지막 행방불명 희생자 한 분이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행방불명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은 2006년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9년 제주국제공항, 2021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등 6곳, 그리고 작년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등 도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413구, 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4명이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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